가슴으로 안긴 바람 선자령에서
간밤에 뿌린 비가 예사롭지 않고 정확하달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일기예보가 불안한 마음을 끌고 예상인원보다 훨씬 적은 버스가 어둠 속에 출발을 한다.
간간이 흩뿌리는 비. 예전에도 그랬듯이 목적지가 안전 상의 이유로 오대산에서 선자령으로 바뀌었음을 공지한다. 봄에는 산불 때문에 이번에는 혹여 예보대로 폭우라도 쏟아진다면 그 길고 긴 계곡물이 불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역사에는 If 가 없기에 우린 안전제일의 코스로 발길을 돌린다.
대관령 북측 휴게소에 도착 이미 폐쇄된 상태련만, 양 때 목장을 찾는 길손들을 위한 주차장은 그래도 분주하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이동 가는 길에 어디선가 바람결에 들리는 귀천하는 소떼들의 울음소리. 흘릴 듯 쓸려왔다가 우우 하고 흩어지는 가슴 아린 이 소리의 정체는 뭘까?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린다는 국선 성황당의 갈림길에서 그때야 그게 징과 꽹과리로 어울려진 굿소리, 그리고 자연림을 가꾸는 간벌하는 톱날 소리, 엔진 소리.
개활지를 지나 선자령 (1157m) 안내판을 따라서 숲으로 이어진 좁은 사잇길에는 어제 내린 비로 온통 질컥이는 물웅덩이와 얽히고 설킨 잡목의 풀들이 발목을 자꾸만 잡는다.
잡목 숲을 들어서니 자연림 곳곳이 돌배나무 팥배나무, 자귀나무들이 굴참나무 참나무 숲에서 소롯 길 질척이는 좁다란 등산로에는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트레킹 코스가 아담하다.
좀 넓어 하늘이 보일 양이면 어김없이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풀과 어울려진 엉컹퀴, 취나물 그리고 가을을 기다리는 억새들의 초원.
갑자기 훤하게 하늘이 보인다 싶어 선 곳에서 드넓은 초원과 개활지.
경사진 사면으로 가득 덮힌 푸른 초지.
목초지가 그득한 그곳에선 대관령 풍력 발전기 49기가 설치되었다는 그 거대한 팔랑개비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연간 19만 Kw 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120도 각도를 이루고 세 날의 느릿함에서 베어 나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쉬익 쉬익 하면서 가다가 힘들면 때론 쉬어가려고 멈춰선 모습.
등을 대고 반대 방향을 바라본 날개는 이때 가 휴식이리라.
무릎이 빠질 만큼 자란 풀 숲을 헤치면서 구릉을 타고 올라선 곳. 사방이 훤히 보이는 바로 그곳에는 남으로 발왕산, 서로는 계방산, 북으론 황병산이 보이고 오늘 그리 가고자 했던 오대산은 서북쪽에 있으리라.
봄날. 능경봉과 제왕산을 거쳐 대관령 옛길을 따라 선인들의 개나리 봇짐지고 떠난 길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그래도 운치 있고 빠르게 흘러가는 비구름 사이로 간간이 푸른 하늘도 비쳐진다.
하산 길에 부는 바람은 올 여름을 다 지내면서 그토록 염원했던 그 시원한 바람이 목돈이라도 타는 듯 모든 바람을 한꺼번에 몰아다 준다.
비가 올까 혹여 하는 마음에 쓰고 간 베트남 모자 “ 롱 “은 연신 불어오는 바람에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모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실강이를 하면서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 발길에 채이는 풀 숲에서 저절로 나올 법한 육자배기 한대목이 떠 올랐다.
가벼워 보이는 산행이지만 왕복 10 킬로가 넘는 길이고 보면 온통 흙 투성인 등산화와 바짓가랑이 사이에 달라 붙은 흙 부스러니 들을 털면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이 여름 마지막 휘날레를 향한 강릉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러 경포대를 향한다.
유일하게 바다와 호수가 한곳에 있다는 경포대 해변을 산책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폐장이라는 말과 이럴 줄 알았다면 수영복이라도 챙겨와서 그 짭조름한 바닷물에 몸이라도 한번 담가 볼걸 하는 미련도 남았지만 백사장 한쪽 끝까지 걸어보는 호기로움으로 마음을 접는다.
반짝이는 수면위로 쉬지 않고 속살거리듯 연신 부딪치는 파도는 어느 님을 향한 염원이었을까 모래톱을 할퀴고 부서 지고 부서 지고 포말로 되돌아가는 반복의 미학에서 인생을 배운다.
인생길에 난관이 없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리라! 어려울 때마다 늘 상 초심으로 돌아가서 저 백사장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내와 시련을 이기는 극기를 배우고 돌아서는 발길에 경포 호숫가에 밤길이라면 산책하기 좋을 법한 호젓한 도로들이 너무나 잘 정비되어 어쩌면 오히려 연인들이 걷기엔 어색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미끈하게 정돈 되어있다.
돌아오는 길엔 맑았다 흐렸다 갑자기 쏱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막히는 길을 돌고 또 돌고 어렵게 길을 찾아서 귀가 길에 올라 늦은 밤 무사히 도착.
이제 8월을 보내는 마지막 주말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