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가슴으로 안긴 바람 선자령에서

no pain no gain 2007. 5. 28. 14:42




가슴으로 안긴 바람 선자령에서

간밤에 뿌린 비가 예사롭지 않고 정확하달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일기예보가 불안한 마음을 끌고 예상인원보다 훨씬 적은 버스가 어둠 속에 출발을 한다
.

간간이 흩뿌리는 비
.
예전에도 그랬듯이 목적지가 안전 상의 이유로 오대산에서 선자령으로 바뀌었음을 공지한다
.
봄에는 산불 때문에 이번에는 혹여 예보대로 폭우라도 쏟아진다면 그 길고 긴 계곡물이 불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

역사에는 If 가 없기에 우린 안전제일의 코스로 발길을 돌린다
.

대관령 북측 휴게소에 도착 이미 폐쇄된 상태련만, 양 때 목장을 찾는 길손들을 위한 주차장은 그래도 분주하다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이동 가는 길에 어디선가 바람결에 들리는 귀천하는 소떼들의 울음소리. 흘릴 듯 쓸려왔다가 우우 하고 흩어지는 가슴 아린 이 소리의 정체는 뭘까
?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린다는 국선 성황당의 갈림길에서 그때야 그게 징과 꽹과리로 어울려진 굿소리, 그리고 자연림을 가꾸는 간벌하는 톱날 소리, 엔진 소리
.

개활지를 지나 선자령 (1157m) 안내판을 따라서 숲으로 이어진 좁은 사잇길에는 어제 내린 비로 온통 질컥이는 물웅덩이와 얽히고 설킨 잡목의 풀들이 발목을 자꾸만 잡는다
.

잡목 숲을 들어서니 자연림 곳곳이 돌배나무 팥배나무, 자귀나무들이 굴참나무 참나무 숲에서 소롯 길 질척이는 좁다란 등산로에는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트레킹 코스가 아담하다
.

좀 넓어 하늘이 보일 양이면 어김없이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풀과 어울려진 엉컹퀴, 취나물 그리고 가을을 기다리는 억새들의 초원
.

갑자기 훤하게 하늘이 보인다 싶어 선 곳에서 드넓은 초원과 개활지
.

경사진 사면으로 가득 덮힌 푸른 초지
.

목초지가 그득한 그곳에선 대관령 풍력 발전기 49기가 설치되었다는 그 거대한 팔랑개비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연간 19 Kw 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120도 각도를 이루고 세 날의 느릿함에서 베어 나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쉬익 쉬익 하면서 가다가 힘들면 때론 쉬어가려고 멈춰선 모습
.

등을 대고 반대 방향을 바라본 날개는 이때 가 휴식이리라
.

무릎이 빠질 만큼 자란 풀 숲을 헤치면서 구릉을 타고 올라선 곳. 사방이 훤히 보이는 바로 그곳에는 남으로 발왕산, 서로는 계방산, 북으론 황병산이 보이고 오늘 그리 가고자 했던 오대산은 서북쪽에 있으리라
.

봄날. 능경봉과 제왕산을 거쳐 대관령 옛길을 따라 선인들의 개나리 봇짐지고 떠난 길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그래도 운치 있고 빠르게 흘러가는 비구름 사이로 간간이 푸른 하늘도 비쳐진다
.

하산 길에 부는 바람은 올 여름을 다 지내면서 그토록 염원했던 그 시원한 바람이 목돈이라도 타는 듯 모든 바람을 한꺼번에 몰아다 준다
.

비가 올까 혹여 하는 마음에 쓰고 간 베트남 모자은 연신 불어오는 바람에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모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실강이를 하면서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 발길에 채이는 풀 숲에서 저절로 나올 법한 육자배기 한대목이 떠 올랐다
.

가벼워 보이는 산행이지만 왕복 10 킬로가 넘는 길이고 보면 온통 흙 투성인 등산화와 바짓가랑이 사이에 달라 붙은 흙 부스러니 들을 털면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이 여름 마지막 휘날레를 향한 강릉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러 경포대를 향한다
.

유일하게 바다와 호수가 한곳에 있다는 경포대 해변을 산책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폐장이라는 말과 이럴 줄 알았다면 수영복이라도 챙겨와서 그 짭조름한 바닷물에 몸이라도 한번 담가 볼걸 하는 미련도 남았지만 백사장 한쪽 끝까지 걸어보는 호기로움으로 마음을 접는다
.

반짝이는 수면위로 쉬지 않고 속살거리듯 연신 부딪치는 파도는 어느 님을 향한 염원이었을까 모래톱을 할퀴고 부서 지고 부서 지고 포말로 되돌아가는 반복의 미학에서 인생을 배운다
.

인생길에 난관이 없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리라
!
어려울 때마다 늘 상 초심으로 돌아가서 저 백사장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내와 시련을 이기는 극기를 배우고 돌아서는 발길에 경포 호숫가에 밤길이라면 산책하기 좋을 법한 호젓한 도로들이 너무나 잘 정비되어 어쩌면 오히려 연인들이 걷기엔 어색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미끈하게 정돈 되어있다
.

돌아오는 길엔 맑았다 흐렸다 갑자기 쏱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막히는 길을 돌고 또 돌고 어렵게 길을 찾아서 귀가 길에 올라 늦은 밤 무사히 도착
.

이제 8월을 보내는 마지막 주말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창공에 그린 너와 나의 꿈 관모산 O.L 대회  (0) 2007.05.28
들꽃 향기 그득한 내 변산 의상 봉에서  (0) 2007.05.28
대한독립만세 광복 산행 백운대에서  (0) 2007.05.28
황산4  (0) 2007.05.28
황산3  (0) 200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