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대관령 제왕산을 넘어 옛길까지

no pain no gain 2007. 5. 28. 14:32

바람의 나라 대관령을 넘다


이제 새벽 6시면 세상이 환 하게 밝다
.

간밤에 뿌린 비로 흙 냄새가 촉촉하고, 싱그러운 아침이 열리는 소리가 부산하다


버스가 출발을 하고서야 5시부터 일어나 못다 잔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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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달렸을까 여주를 지나는 표지판을 보고 나서야 산행 목적지가


가리왕산에서 제왕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 겯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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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산불예방으로 갑자기 입산허가가 취소되었다는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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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관령 옛길. 꼭대기 휴게소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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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구한데 옛 정취는 다 사라지고 그 복잡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덩그러니 홀로 바람을 맞고서 있는 기념비와 새로 실험 중인 풍력발전기만


세상을 날려 버릴듯한 바람 속에서 우리 일행을 맞아준다
.


작은 능선을 넘어 바람을 피해 초입에 이르니 산불 감시하는 분이 길을 막고


산불예방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서명을 하라고 한다
.

목표는 우측 고지 능정봉(1123m) 잡목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지난번 월출산에서 보았던 감청색과 보라색을 섞어 놓은 듯한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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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피면 별 모양으로 벌어진 모양새가 가히 일품이다. 일행에게 물어보니 아시는 분이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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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비로 바위는 미끄럽고 낙엽 쌓인 길은 마치 스폰지를 걷는 듯한 푹신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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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 능정봉 정상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고, 다시 하산하여


능정봉을 거치지 않고 제왕봉을 향해 먼저간 일행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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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서면서 아까 안내하시던 산불 감시원에게 저 꽃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더니 그것은 얼레지 꽃이라며 잎은 나물 반찬으로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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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과(百合科 Lili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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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Erythronium japonicum)
키는 30㎝ 정도이고 비늘줄기를 가진다. 잎은 2장으로 마주보는 것처럼 달리는데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나 주름이 지기도 하며, 잎에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4월경 잎 사이에서 나온 꽃자루 위에 보라색 꽃 1송이가 아래를 향해 핀다. 꽃잎은 6장으로 뒤로 젖혀지며, 안쪽에 진한 자주색의 W자형 무늬가 있다. 수술은 6, 암술은 1개이지만 암술머리는 3갈래로 나누어진다. 열매는 삭 과()로 익는다. 봄철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으며, 초가을에 비늘줄기를 캐서 쪄먹거나 이질·구토 치료에 쓰고 강장제로 사용한다. 숲 속의 나무그늘에서 자라는데, 나무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었다가 잎이 나올 무렵에 열매를 맺고 죽기 때문에 봄을 알리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
申鉉哲 글


임 도와 산길로 구분되는 길목에서 아마도 진달래 무리가 너무 아름다워 새로 산행 길로


개척하지 않았나 싶은 등산로이지만, 아직 추워서 봉우리도 맺지 못한 진달래가 대부분이다
.

대관령의 능선에서 산 너머가 보이는 곳은 마치 바람의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센 바람에 눈도 뜨지 못할 정도이지만 그 안쪽 길은 마치 봄날과 같은


안온함이 있다
.

능선을 따라 몇 개의 바위 봉을 넘으면서 도착한 제왕산(841m) 한쪽 팔로만 버티고 선


소나무 늠름한 기상에 만고풍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

내려서는 하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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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 경개를 둘러보니 궁궐의 재목으로만 쓰인다는 적송(춘양목)들이 어깨를 견주고 늘어선


자태가
.....

문헌에 따르면 궁궐을 신축하거나 개 보수 할 때면 관리를 보내 도장을 나무마다에 찍으면서


"
어명이요!"를 외친다던 바로 그 춘양목이 아닌가
?

일제 강점기때 그 나무가 욕심난 일본에서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강원도 춘양에 산 깊은 곳에


까지 철로를 깔고 항구를 개설하여 모든 춘양목을 실어낼 정도로 욕심을 내서 원래의 이름이


속까지 붉다 하여 적송이라 불리던 나무인데, 강원도 춘양면의 지명을 따서 춘양목이란


이름으로 더욱 더 유명하게 된 우리의 나무다
.

!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단어를 옛적부터 구사할 만한 충분한 이름값을 한다 고나 할까
?

소나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안아보니 두 아름은 족히 넘을 소나무 군상들이 족히
30 ~ 40 m

는 될 정도로 미끈하게 쭉 뻣은 기상은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던 고구려의 기상이라고나 할까


마치 로마 병정들이 새로 갑옷을 입고 늘어서 도열하는 듯한 군상들이다
.

경사진 비탈이나 우묵한 골짜기를 마다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흐뭇한 정경은

동령수고송 (冬領秀孤松)이란 선인의 시 귀가 그저 가슴에 새겨질 따름이었다.


물소리가 들릴 때 즈음하여 만난 대관령 옛길
.

계곡으로 이어진 물길 따라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물길이 제법 많이 모였다 싶을

때 호젓하게

걷는 나 자신의 모습이 마치 호랑이 나오던 그 시절로 돌아가 개나리 봇짐하나메고 친구와


주막에 들러 대관령을 넘나드는 상상 속에 빠져 본다
.

하산하여 들른 대관령박물관에서 옛 것을 소중하게 하는 마음을 다시 배우고 그 옆을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물따라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


이제는 귀환길
.

석양에 물든 둥근해가 낮으막하게 전선줄에 걸려 달리는 도로를 따라 바꿔가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베토벤의 월광의 한 악장을 연주하는 듯한 착각 속에서


봄날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