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눈꽃 축제에 다녀와서
언젠간 가리라 하고 마음먹은 겨울 설악등반.
그 응어리진 계획을 지난 주말을 기해서 풀었지요.
토요일 밤에 출발을 해서 잠시 대기 하다가 장비를 갖추고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04시.
에정대로라면 07:30 분경에 뜬다는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그러나 출발해서 10분도 되기 전에 20년전에 사서 한동안 신고 다니다가 쳐 박아둔
등산화가 그 동안 내쳐 관리하지 않은 복수심으로 발길을 잡는다.
아니 10시간정도를 걸어야 하는 산행에 처음부터 발길을 잡히면 어떻하나 우려도 되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하고 산행을 재촉한다.
한 동안 길을 걷다가 뒤 돌아보면 마치 한마리 커다간 용이 용틀임이라도 하듯
헤드랜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길게 길게만 이어지던 그 한 밤중의 산 허리.
헉헉대는 숨 소리와 눈밭에 박히는 아이젠 소리만이 그 어둠 속의 진실을 알고 있으리라.
노출되는 부분은 금년들어 제일 춥다는 하필이면 그날따라 꽁꽁 얼어버린 상태라
눈만 빼꼼이 내 놓은 상태에서 힘찬 발걸음이 이어지고 2시간여 걸어서 도착한 설악폭포.
50여 미터의 그 장엄한 폭포는 겨울이 가둬놓은 상태에서 허연 배만 드러낸체로 컴컴한
암흑 속에 잠들어 있다 겨울엔 폭포도 쉬는 구나.
잠쉬 휴식과 그리고 이어진 행군. 또 행군.
어느 능선에선가 희멀건 동선을 시작으로 여명이 밝아온다.
오늘 하루를 온 누리에 비춰줄 그 찬란한 여명의 빛의 시작이리라.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도착한 대청봉.
그 언저리엔 무서운 바람으로 휘몰아쳐서 무엇인가를 붇들지 않으면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매서운 폭풍의 언덕이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드디어 구름위로 올라온 태양 그리고 서서히 비춰지는 산하.
벅찬 감격의 순간도 잠깐 그 매서운 추위 속에 내 팽겨진 펄럭이는 깃발과 같이
온몸이 떨려온다.
발은 이미 감각이 없는지 오래다.
년 중 행사 가운데 내가 빼 놓지 않고 하는 게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어느 산이든 정상에서
천지신명께 나의 이름을 아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비나리다.
격식과 절차는 무시하지만 그래도 제갈량의 동남풍을 부르는 염원 못지않은 나름대로의
비원이다.
동해바다의 찬란한 태양과 바다를 뒤 덮은 낮게 깔린 구름과 황금비늘처럼 비치는 수면의
웅장함과 첩첩으로 둘러 쌓인 산야의 능선들과 어깨동무 어깨동무 하면서 겹겹으로 둘러
쌓인 우린의 산야가 모두 휘 둘러 볼 수 있는 발 아래에 있다.
용아장성, 울산바위, 화채봉, 달아봉, 끝청, 심부산 등등...
대청봉 과 양양 이라네! 라고 세워진 돌비석을 뒤로하고 중칭 대피소로 하산 코스를 잡는다.
올라갈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
대피소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쓰려고 모자를 집으니 꽁꽁 얼어붇어 움직이지 않고
겨우 살살 달래서 장갑까지 끼고는 아이젠을 다시 점검하고 희운각대피소로 발길을 돌린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지마라 어떻게 내려 왔냐고 묻지도 마라.
다만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눈 밭에 넘어지고 걸리고 부딪치면서 우리네 인생처럼
가파른 하산길을 타인의 실수를 허허 거리는 웃음으로 달래면서 구르고 또 굴러 눈 속에
내가 있고 또한 내가 눈 밭 속에 있으니 하팻츠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설악산 그 언저리 그 골짜기의 처절한 몸부림을 어찌 말로 다 하랴!
내려 오다가 멈춰서 건너다 본 능선 그 어디쯤엔 분면 사슴을 닮은 슬픈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아! 저 눈밭에 사슴이....
아마도 저 사슴의 눈동자 속에도 내가 있을 것이라 생각 하면서...
여름에 보았던 그 많은 폭포와 비경들은 어찌 이리도 철저하게 동안거에 들어가 내리 쏫아져
장엄 그 자체를 보이던 폭포들은 허연 배를 드러내 놀고 팔자 좋은 휴식처럼 지나가는 등산
객들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식수는 떨어지고 목이말라 생각 같아서는 저 허옇게 늘어진 폭포 한 덩어리
를 뚝 잘라 먹고 싶었지만 아 그림의 떡이란게 바로 이런 것.
자료에 의하면 " 대청봉에서 시작되는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은 공룡처럼 생겼다는 공룡능선, 하늘에 핀 꽃이라는 천화대능선, 화채봉능선 사이에 있다. 양쪽에 솟은 봉우리들이 마치 불상 몇 천 개를 새겨놓은 듯한 이 계곡을 따라 염주폭포를 비롯해 천당폭포(天堂瀑布)·오련폭포(五連瀑布) 등과 문수보살이 목욕했다는 문수담(文殊潭), 귀신얼굴처럼 험상궂은 귀면암(鬼面巖), 신선이 누워서 경치를 감상했다는 와선대(臥仙臺),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는 비선대(飛仙臺), 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금강굴(金剛窟) 등이 있다."
흘러간 유행가 자락을 웅얼 거리면서 가다 지치면 쉬고 다시 힘을 내서 걷고....
하산 길이 그리 유쾌 하지 않은 이유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 처럼 생각 되어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못하고 걷다가 끝이 나는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터벅이는 하루 해가 8시간 30분의 산행을 끝으로 무사 귀환헀다.
정말 살아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들 정도로 눈 속에묻혀서 눈과 함께 보낸 그 시간 들은
내 인생에 군에서 훈련때 말고는 온 몸이 욱신 거리는 기분 좋은 통증으로 유쾌한 기억으로
저장되는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이 될 터이다.
혹여 우린 친구들 중에 내일 또 내일 하고 미뤄둔 계획이 있으시다면 하루라도 더 자나가기
전에 인생의 한 휙을 긋는 큰 결심을 해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P.S :사실 보디빌딩하는 사람들은 등산을 잘 못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몸도 크고 근육도 많으니까 산도 잘 타리라 생각하지만 단거리에 힘쓰는 것은 이등하라면 서러워 하지만 장거리 산행에는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 등산을 할려는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철저한 장비점검과 활동에 맞는 등산복 등등을 필히 점검하시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하산해서 등산화를 벗고보니 엄지 손톱 보다 더 큰 물집이 터져 그리도 쓰리고 아팠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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