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이덕무. 한정주 譯. 2018.
아침노을과 저녁 노을.
아침노을은 진사辰砂처럼 붉고,
저녁노을은 석류 것처럼 붉다.
朝霞辰砂紅 夕霞榴花紅. -이목구심서 2-
말똥구리와 여의주.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라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에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
마음의 꽃과 입속 향기.
내가 열여덟 또는 열아홉 살 무렵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음에 망령된 생각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꽃이 핀다. 입으로 망령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오래 하면 입에서 향기가 난다."
이때 백동수가 붓을 흔들고 무겁게 탄식하면서 "부처로다! 부처로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내 마음이 아팠다. -이목구심서 2-.
아이, 이덕무야! 이덕무야.
가난으로 반 꾸러미의 엽전도 모으지 못하는 처지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구하려 하고, 어리석고 둔해 단 한 권의 책도 다 통해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 모든 서 책을 다 보려고 한다. 진실로 탁 트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어리석은 자라고 하겠다. 아아, 이덕무야! 이덕무야! 네가 바로 그렇지 않느냐. -선귤당농소-.
가는 모시실로 호박을 끊을 수 있다.
가는 모시실로 호박(琥珀)을 끊을 수 있다.
얇은 판자 조각으로 쇠뿔을 자를 수 있다.
군자는 재앙을 방비할 때 소홀히 여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선귤당농소-.
정월 초하루의 깨달음.
정월 초하루에는 겨울의 큰 추위가 여전히 위세를 부려 사람이 제대로 기운을 펼 수가 없다. 매년 이것이 한스럽다. 사람이 반드시 매년 나이를 한 살씩 더하고 점점 주로 늙어 주름살이 늘어 가니 또한 슬프다. 서로 만나 좋은 말을 나누지만 속된 기운만 가득해 맑은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쌀을 동냥하는 화상(和尙) 들은 그 목소리가 사나워 가증스럽기만 하다. 어른들은 더러 새 옷으로 단장하고 자못 자랑스럽게 여겨서 먼지 하나라도 옷에 묻으면 입으로 불고 손으로 털며 호들갑을 떤다. 이러한 우리는 케케묵은 사람일 뿐이어서 눈여겨볼 필요도 없다. 집집마다 양쪽 사립문의 재앙을 막는 부적으로 울지(尉遲)를 그려 붙였지만 조금 더 귀신의 풍채를 갖추지 못했으니 한탄스럽다.
사대부가에서 소를 잡아서 사람마다 붉은 소고기를 지니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마치 군대의 깃발과 같아 이때 굶주린 솔개가 아래로 내려와서 고기를 채 간다. 이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이다. 무릇 정월 초하루는 외면에 국한시켜 본다면 비록 해가 새롭고 달이 새롭고 날이 새롭지만 풍습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 단지 부모님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형제가 화평 하고 기뻐하면서 색동옷을 입고 서로 어울려 춤추며 밝은 등잔과 따뜻한 술잔을 나누는 연회 앞에서 오래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만이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사람들은 정월 초하루가 유독 즐겁겠지만 타향에서 오랫동안 나그네처럼 지내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느끼고 옛것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정월 초하루보다 더 슬픈 날은 없다. 나와 같은 사람은 슬픈 감정에 잠겨 빠져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영해(領海)에서 부모 형제를 생각하자니 우울하고 슬플 하기만 하다. 곤륜산을 동남쪽으로 옮겨놓겠다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어느 때 에나 다시 돌아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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