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 집 종, 옥랑이 독신으로 살아간 사연. 조구명의 옥랑전. 최기숙.
옥랑은 종성에 사는 여자다. 내시의 종이다. 북쪽 지역에는 미인이 많다는데, 그중에서도 옥랑은 빼어나게 아름다워 이름을 떨쳤다. 종이었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책과 역사를 좋아했다. 집안이 부유해서 모아놓은 책도 많았다. 평소 거처하는 방에는 수많은 책들이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옥랑은 그 안에서 자고 머무르며 문을 나서지 않았다.
옥랑 마을에 글 짓는 솜씨가 빼어난 소년 유생이 살고 있었다. 그가 일찍이 옥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렜다. 비록 종이지만 문장을 알고 교양이 풍부하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고 있었다. 유생은 과연 진짜 일지 궁금했다. 그저 돈 많은 노비의 얼굴만 예쁜 딸 일 수도 있었다. 그런 여인이라면 차라리 기생집에 드나들며 손쉽게 사귀는 것이 나았다.
어느 날 유생은 옥랑의 재주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시 한 편을 써서 옥랑의 집에 살짝 던져보았다. 잠시 후 곱게 접어 조그만 돌에 감은 종이가 담장 안에서 넘어왔다. 펼쳐보니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유생의 마음을 넌지시 받아주는 어여쁜 시구였다. 유생은 점점 더 옥낭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 뒤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담장 너머로 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시를 주고받는 사이에 유생은 점점 옥낭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유생은 옥랑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옥낭은 허락해 주었다. 만남이 잦아질수록 유생은 옥란과 헤어지기 싫었다.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아무리 오래 이야기를 해도 질리지 않았으며, 시를 이해하는 마음만큼은 어떤 친구와도 견줄 수 없게 통했다. 만날수록 정은 돈독해져 갔다. 이제 옥낭 과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만 남았다. 옥랑도유생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의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세간의 비난을 받는 천한 노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옥랑이 결단을 내렸다.
'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어디 가서 다시 이런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옥랑 은 부모님께 고하고 혼인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유생은 집안이 가난하지만 선비 신분이었다. 재산이 있어도 천한 옥랑의 집에서 굳이 마다 할 일은 아니었다. 옥랑의 부모는 딸의 청을 받아들여 혼인을 허락했다.
어느덧 혼인날이 가까워졌다. 혼인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옥랑의 집으로 심부름꾼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유생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옥랑의 집에 청천 병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날로 옥랑은 과부를 자처했다. 정식 혼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마음을 주고받았으며 장례를 약속한 사이였다. 옥랑은 유생의 집으로 달려가 소복을 입고 아내의 예, 며느리에 도리를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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