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령의 김양원전. 도박장의 협객, 시인이 되다. 최기숙 옮김.
김양원의 이름은 잊히고 자로 알려졌다. 젊어서부터 협기가 있어서 여자를 사 술을 팔게 했다. 체구가 크고 모습은 사나웠으며 기생 치들과 도박장으로 유랑했는데 날카로운 기세가 등등 했다. 딱 부러지는 성품이 위엄이 있어서 사람들이 감히 업신 여기지 못했다. 통감절요 한 줄도 알지 못했지만 시벽 이 생긴 뒤로 태도를 바꾸어 시인들을 따라다니며 지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시로 이름이 난 사람은 귀한 손님처럼 대했다.
그는 민첩하고 넉넉하게 시를 지어 남이 열수를 지으면, 자신도 열 수를 짓고, 남이 백수를 지으면 또한 백수를 지었다. 남보다 뒤쳐지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유람함에 감상하는 것을 좋아해 따라다니는 여자에게 명승지에 다니는 비용을 마련하게 했다. 그러면 여자는 그 뜻을 따랐는데 늘 조금밖에 마련하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여자 또한 기이하다 하겠다.
그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자연의 기운을 빌려서 내 뱃속에 든 음식 냄새를 씻은 뒤에야 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시를 알게 된다. 분명한 계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 우연히 술잔치를 펼친 중인들의 시에서 시를 읊고 즐기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낮은 처지에 사람들이 사대부들처럼 풍류 잔치를 열고 품격 있게 노래하는 모습이 거친 사내의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문득 머릿속에 하얘지며 답답한 가슴을 훤하게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울분에 사로잡혀 기생을 끼고 풍류판을 전진하며 호령하던 때와는 격이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메마른 마음이 적셔지고 언땅의 새순이 돋듯 연약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그게 그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도박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익숙한 그는 곧장 시인을 찾아가서 자신을 받아 달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그를 시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흥이나면 술판을 벌이는 것이나 예쁜 기생을 불러 음악을 연주하고 춤추게 하는 것은 사회와 도박장이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는 시적 영감을 얻으려고 유람하는 취미를 새로 갖게 되었다. 사내다운 풍모의 부드러운 시까지 읊조리자 그렇지 않아도 술판에서 인기를 모으던 그를 따르는 기생들이 많아졌다. 술판의 위기를 일성으로 제압하던 그의 거친 입이 별과 달을 담은 투명한 맑고 투명한 시를 읊었다. 어여쁜 기생들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사모하여 조금이라도 더 그 곁에 가까이 가려고 교태를 부렸다.
일행이 호년관에 도착하니 산봉우리의 그림자가 뜰에 드리우고 아득히 인적이 없었다. 문을 열자 소당이 이웃에 사는 중을 위해 관음상을 그리고 있었다. 미처 다 그리지 못했지만 악수를 하고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같은 만남은 다시 얻기 어렵다면 놀라워했다. 천장 사와 스님 금파와 용해가 왔는데 모두 운치 있는 선승이었다. 용해스님은 묘향산에서 온 지 겨우 며칠 뒤에 되어 그동안 들러본 신경지에 관해 역력히 들려주었다. 마치 혀끝에서 안개가 자욱하고 노을 진 풍경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때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닥치더니 안개와 산 아지랑이가 얼굴에 뿌려졌다. 산이 신이 찾아온 듯 엄숙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검은 구름 사이로 "고기 사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장난삼아 이렇게 말했다.
"선제 동자가 관음보살님 연못속의 속의 잉어를 훔쳐서 인간 세상으로 놀러 온 모양이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비바람 부는 빈산에 생선 파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 세상을 그려놓은 철선 같은 사람이 큰 물고기 할 마리를 어깨에 메고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수염을 제치고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 은하수에서 물고기를 낚아 왔습니다".
놀라서 보니 김양원이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시오 나를 두고 오시다니 어찌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곧장 물고기를 삶아서 술을 데우더니 시를 짓자고 재촉하기를 전처럼 하였다. 이 두 사람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때 조일영 이지 지은씨는 이러하다.
안개와 노을 속에 사람이 늙어져 신발 한 켤레만 남았구나 .
그를 아는 스님이 오시니 묘한 향기가 번지네.
아! 무릇. 남자는 잘생기고 볼 일이다. 옛날에도 '기생오래비'는 존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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