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가끔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은근한 수를 쓰는 사물들이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건조기, 선풍기와 아주 작은 충전기나 뭐 그런것들이 자꾸만 하소연을 한다.
물론 한번 태어난 생은 언젠가는 죽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것들은 '기대수명'이라는 것을 은근히 믿는 구석이 있는데, 이게 터무니 없이 적거나 갑작스런 사망으로 마감할때는 다시한번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 생에 그토록 애착스러웠던 물건은 무엇이었는지? 또 잊지못하는 인연은 누구였는지?
10년된 안마기. 기능은 멀쩡한데 표피비닐이 끈적이면서 떨어져 손에도 묻고 바닦도 지져분해서 천으로 새로 옷을지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이럴때 심기를 건드리는 녀석이 보일러다. 처음보일러 교체 시기는 몇년 되지도 않았는데, 가장 춥다는 바로 그때 고장이 났다. 여기저기 전화로 AS를 물어보니 빠른 수리나 교체가 1주일쯤 걸린다는 결론에 도달했을때 얼마나 난감했던지?.
이번에도 잠자리에 들시간 보일러가 에러코드가 뜨고 작동이 멈췄다. 인터넷과 유투브를 확인하니 배출수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면 오버플로워되는 순간의 에러라고 한다는걸 찾았다.
다음날. 가스버너를 총동원해서 3개를 확보하고 베란다 온도를 높이고 벽과 천정의 얼어있는 부분을 녹이면서 아주 오래전에 형님이 쓰시던 "산야로" 석유버너. 이게 예전에는 당당하게 한몫한 물건이었다. 요즘엔 알콜로 예열하고 압력펌프로 분사시켜서 점화하는 그런 복잡한 물건은 줘도 쓰지 않는 세상. 살살 달래서 점화하고 바케스로 물을 끓이고 응축수 호스를 녹이면서 속에 얼어있는 얼음들을 빼내고.
후끈하게 달아오른 베란다.
그리고 열선을 걷어내고 보온재를 사다 끼우고 청소를 하니 4시간이 흘쩍 지나갔다.
열선이 버틴시간은 4년 남짓. 이제는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