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목포의 눈물과 무정천리.

no pain no gain 2024. 8. 14. 10:39

목포의 눈물과 무정천리.

신익희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이승만이 북벌론을 펴다가 도망쳐 버리자 국회의장으로서 항의 방문을 하였다.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고 해놓고서 도주한 점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당연히 묵살 되었다. 그가 이승만과 정치대결을 벌인 것은 1956년 대통령선거 때였다. 이승만은 자유당 후보, 신익희는 민주당 후보였는데, 진보당 후보 조봉암으로부터 양보를 받아서 야권 단일화가 이뤄진 상태다. 신익희는 중립화 통일론자인데, 어느 때보다도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호남선 열차를 타고 전북 익산으로 향하던 중 열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쓰러져 숨지고 만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신익희운구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군중들은 몰려들어서 그의 유해를 경무대 쪽으로 끌고 가는 경찰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신익희가 묘사된 듯한 노래가  <비나리는 호남선>이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하고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약속도 하더란다.

이 노래는 신익희의 죽음을 타살로 본 압도적 다수의 심정을 대변하는 가요가 되었다. 흔히 정치 이야기로 흐르기가 십상인 거리에 술집에서는 틈만나면 노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조병욱이 민주당의 후보가 되어 부통령 후보 장면과 함께 이승만 진영과 대결을 준비한다. 그런데 후보 등록을 마친 조봉옥 이 선거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신병을 얻어서 미국의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둔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 되고 대신에 부통령 선거가 민심의 풍향을 알리는 척도가 되었다. 민주당에서도 장면의 승리가 절실히 요구되었지만 자유당에서도 이기붕은 당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승만이 연로하여 새로운 부통령이 실제 통치 행위를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장기 집권을 획책하는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자 지식인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교단이나 공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때 유행하던 <유정 천리>가 정치적 귀향자들의 심장을 은유는 힘을 발휘한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을 어린 보따리가 황혼빛이 젖어드네.

유석 조병옥의 죽음을 슬퍼하는 추도가로 애창했다. 그리하여 유정천리가 퍼지면 퍼질수록 자유당에 불리해지는 상황이 연출되자 자유당은 마침내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말았다. 이렇게 처음에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된 '자유당반대 운동'은 2.28 학생 봉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중고생들의 시위를 낳았다. 여기에 경찰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대응하여 김주열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의 청년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4.19 가 터지게 된 것이다. 유정 천리는 결과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정적 암살로 연명해온 이승만 독재자의 숨통을 끊는 노래가 된 것이다.

그러고도 유행가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4.19 혁명이 불과 1년 후에 5.16 쿠태타로 무효화되고, 세상은 다시 삼엄한 군사정부 치하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때 황량한 거리에서 한국적 상황을 허탈해하는 지식인들이 현미에 <보고싶은 얼굴>을 부르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그래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서/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유행가들 중에서. 김형수作.

그 이후 민주화 운동중에도 혹은 시위나 노동운동중에도 혹은 스포츠경기중에도 때창으로 천지를 흔들던 함성소리로 목포의 눈물이 불려졌다.
2024 파리올림픽이 열린경기장에도 괭과리 소리와 함께 소리높여 불러서 응원하는 목포의 눈물을 상상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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