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아흔살, 애인만 넷. 마르셀 作

no pain no gain 2024. 8. 9. 10:15

아흔살, 애인만 넷. 마르셀 마티오作

2000.1.27.
그토록 원했던 자유는 슬픔밖에 가져다주지 않는다.
드디어 나는 자유다! 1932년 이후로 처음으로 내 멋대로 행동해도 되고. 나를 감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희희낙락해야 마땅하다. 오랜 동반자와 사별하고 얻은 자유. 내가 결코 바란적없는 아내의 '자연사' 덕분에 얻은 자유니 마음이 가벼울 법도 하다. 하지만 사실은 슬픔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감출것도 없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쓸수있다.  시시콜콜한 정리 정돈의 규칙, 강요당한 습관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애인을 만나러 나가도 귀가 시간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일기에 불륜 상대에 대해 써도 상관없다. 그런데 감추고 살아야 했던 시절보다 더 괴롭고 힘들기만 하다. 오후 2시 카트린과 함께 밸퐁텐 노인회 관에 점심 먹으러 갔다. 나는 내가 좀 더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애들 엄마가 자꾸 나를 부르는 기분이 든다. 카트린은 오후 4시에 돌아갔다. 나는 혼자다. 이렇게 혼자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00.2.1.
<나이 듦에 대한 단상>
* 해마다 꽃으로 장식한 생일상이 무덤처럼 느껴진다.
*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어울린다.
* 기억력을 의심받는다.
* 동년배들의 부고장이 날아온다.
- 다음은 내 차례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평균 수명과 자기 나이를 자꾸 비교해본다.
* 호화 양로원도 음산하게만 느껴진다.
* 옛날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 노인 노화는 평등하지 않다.
* 인터넷 세대, 정보 과학이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 노인들끼리 어울리는 잔치 자리가 부담스럽다.
* 모자, 옷 따위에 공을 들이며 젊어 보이려 한다.
* 전원주택을 꿈꾼다.

2000.2.4.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은퇴 이후 생활도 바쁘다 이 무수한 여가의 가능성을 어떻게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마도와 섹스도 해야 하고, 엘렌과 릴리, 그 밖의 내 전화를 기다리는 여자들에게도 전화도 해야 된다. 시청 비서관 노릇도 모자라 수많은 단체들과 연을 맺고 그러고도 여가를 즐기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2000.2.8.
나는 평생 아내를 속였다. 부부간의 정조관념은 -적어도 나는- 가져본 적도 없다. 나는 결혼으로 희생당한 내 자유를 위해 복수했다. 어쨌거나 나는 결혼에 매여 있지 않았다. 차려놓은 밥상이라는 감이 오면 절대 뿌리치지 못했다. 나는 불륜 상대를 만나러 가면서도 전혀 거북 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애들 엄마가 죽고 없는 오늘날에야 거북 함을 느낀다. 그런 불륜 상대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고 순결하게 살았다 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마도와의 관계를 청산할 만한 용기는 절대 솟아나지 않을 것이다. 마도를 만나러 가면 그녀가 어찌나 욕망을 절절하게 드러내는지, 그녀의 예쁜 눈과 젊은 여자처럼 탱탱한 가슴을 보면 나도 또한 욕망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나는 마도를 '채워 줘야' 하고 그렇게 몸을 섞으며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애들 엄마가 살아 있을 때에는 '섹스가 끝난 후의 슬픔'이란 걸 몰랐다.

70년의 결혼생활이 아내의 자연사로 이어진 노인의 자유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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