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피천득의 '인연'

no pain no gain 2024. 1. 3. 12:41

피천득의 '인연'

1910~2007. 즉 100세 가까이 산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가득하다.
중국 상해로 공부하러가서 안창호선생을 만나 사사를 받고 편지 왕래를 하고, 이광수와의 인연으로 책속의 주인공 이름을 지어주고. 나이는 들어도 생각은 청춘으로 산.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연꽃 모양 청자연적이 있는데 그중 꽃잎 하나만 약간 꼬부라진. 균형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이다.

"봄이 되면 고목에도 찬란한 꽃이 핀다. 병든 장미보다 싱싱한 백합, 신비스런 모나리자보다 맨발로 징검다리 건너가는 시골처녀를 더 대단하게 여기게 되는."

"종달새는 갖혀 있다 하더라도 푸른 숲, 파란 하늘, 여름 보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꿈을 꿀 때면, 그 배경은 새장이 아니라 언제나 넓은 들판이다."

"인생은 빈 술잔, 카펫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고 온다"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 한 얼굴이다."

"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 나의 여인의 눈은 태양과 같지 않다. 산호는 그녀의 술보다 더 붉다."

"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 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솜씨,  생에 대한 희망고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

"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도시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이 내린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에 있다.
맛은 앝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은 생활의 맛이오,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과거를 역력 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 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피천득은 열입곱살에 상해로 가서 여덟살 형인 주요섭을 만나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 형은 대학의 특대생. 영자신문 주간. 토론회 학년대표.마닐라 극동 올림픽에 중국대표로 출전 우승. 독립신문을 만들다가 옥살이. 결혼 때까지 함께 하숙.
그리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작품 모태는 피천득의 에피소드.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실제로 어린시절에 돌아가신 아버지. 홀로된 어머니는 화장한번 비단옷 한번 걸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오로지 아들과의 생활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중국여인과 이루지 못할 사랑한 그의 아호는 여심餘心-타고 남은 마음-.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조약돌 같은 인생. 다시 조약돌을 손에 쥐고 만져 본다. 부드럽고 매끈럽다. 옥도 아닌 것을 구슬도 아닌 것을,옥이면 별것이요 구슬이면 별것이냐. 곱고 깨끗한 것이 부드럽게 내 손에 쥐어어지면 그것이 곧 옥이요 구슬이지."

"그는 구원의久遠 여상女像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살다가 갔다. 그의 여인은 단테의 베아트리체, 셰익스피어의 코델리아, 디킨스의 에그니스였다. 설사 그런 존재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너무나 수줍어 접근할 용기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상대성 이론의 정의를 물어 보았다.
"한 남자가 예쁜 여자와 1시간 동안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 1시간은 1분으로 생각되겠지요. 그러나 그가 뜨거운 난로 옆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면 그 1분을 한 시간이나 되게 느껴질 거요. 그게 바로 상대성이오."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폐포파립 弊袍破笠을 걸치더라도 마음이 행운유수行雲流水같으면 곧 멋이다. 멋은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가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천금을 주고도 중국 소저의 정조를 범하지 아니 한 통사 홍순원은 우리나라에 멋있는 사나이였다."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 어렵고 보람이 있다. 친구는 그때그때의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이별이 아니다. 죽음도 아니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극이 온다."

내가 손에 꼽는 존경하는 작가중에 한분.
두고두고 읽어도 지루하거나 질리지 않고 매번 신선한 오월의 아침처럼 다가오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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