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다시읽는 하얀전쟁. 안정효作

no pain no gain 2023. 11. 23. 16:09

다시읽는 "하얀전쟁"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 참전을 바탕으로 전쟁소설을 썼다. 다른 작가들도 썼지만, 아주 리얼한 묘사가 최고의 현장감을 준다. 41년생. 얼마전에 안 작가는 죽었다.

한기주병장은 불어와 영어가 되는 유일한 파견분대장으로 백년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대신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부은 미군이 들어가 패배한 전쟁이다.
"밖에서 낳아 오셔도 이해하겠어요."
딱 한 줄로 요약되는 문장이 의미 심장하다.
아이를 못 낳는 책임이 자기한테 있을지 모르니까 다른 여자에게 서라도 생산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씨받이. 만일 아이를 못 낳는 것이 내 탓이라면 나는 아내가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오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차내에 계에신 시 인사 수 욱녀 여러분, 본인은 정의의 십자군으로 월남 전선에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두 다리를 잃고......"

출판사 제 3부장으로 근무하는 한기주.

용문산 골짜기 땡볕 속의 유격훈련, 부산으로 향하던 시커먼 야간 군용열차, 한 주일 동안에 불안한 항해, 나트랑 바닷가에 서늘한 바람과 흐느적거리는 야자수, 죽음의 계곡, 24 고지에서 목격한 한낮의 나른한 죽음, 야간 포격과 조명탄, 산 속에 더위를 머금은 온갖 열대식물, X자로 두타 래의 탄약을 가슴에 두르고 숲 속을 뒤지던 병사들, 깡통 맥주 한 상자 주고 사단 치료실에서 받은 포경수술, 닌호와 전투, 혼헤오산의 포탄 구덩이,  겁먹은 베트콩포로의 퀭한 눈, 헬리콥터의 퍽퍽퍽퍽 거리는 엔진 소리와 먼지 바람에 날리는 풀잎들, 새벽에 공수되던 병사들의 축축한 침묵, 두런두런 내리는 부슬비 속에서 발갛게 피오르다가 다시 꺼지는 담뱃불, 순서도 논리도 없이 서로 다투 듯 바쁘게 망막을 스치는 장면들.
그리고 얼굴, 그 수많은 얼굴들. 엿장수 고물카 윤주식 일병, 팬팔 주특기의 김문기 하사, 언젠가 베트남의 역사를 되새김질하던 락 닌의 낫 띠엔 촌장, D-1데이의 작전 전야에는 베트공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고 언제나 대금을 시퍼렇게 갈아대던 백정 민정기 상병, 재미있고 신난다 던 AR 사수 성병조 상병, 바람피우지 말고 마누라만 생각하라고 한 달에 한 개씩 여자 고무신을 보내주는 아내의 정성도 아랑곳 않고 꽁까 이만 밝히던 영감 진승각 상병, 봉굘 채무겸 상병에게 적으로 오인되어 죽음을 당한 윤병철 병장, 그리고 전희식 병장과 변진수 일병......
겁보 김상병은  지난 한 달 동안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지네. 실뱀. 지뢰. 죽창. 독약. 따위 묘한 얘기와 월남에 가면 어떠 어떠한 고생을 한다는 말을 퍼트리고 다녀서 그러지 않아도 겉으로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겁을 집어 먹고 있던 병사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만들던 위인이었다.

지능지수는 158. 키는 157. 아내가 4센티 크다.

" 베트콩 에게 포로가 되면 양키는 이 백 달러, 월남 민병대는 오십 달러만 내면 풀려날 수가 있다더라. 따이한은 백 달러 내야 할걸."

정리 되지 않은 생각들.
무더운 성탄절에 죽어간 전우
총탄이 튀는 밤에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죽어간 병사는
죽음과 살인을 버리고
희망과 안식을 찾았겠지
죽음은 아름답지 못하니
어떤 죽음도 아름답지 못하니
무한한 절망의 가능성을 침묵하는 들판에서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게 아니었는데
전쟁터의 인간은 소모품
운동경기에 출전하듯
전쟁터로 찾아간 사람들
죽음을 희롱한다는 게 아니었는데.

군단장의 집이라 불리는 양평옥. 송별식에 지옥이는 "살아만 돌아오신다면 같이 자 드리는 거 어렵지 않아요."

짜우는 12살 뚱미에 살았으며 싼미국민학교 5학년. 엄마와 단둘이 사는데 밥은 하루에 두 끼 먹었고 점심은 바닷가로 나와 따이한에게 얻은 깡통으로 때웠다. 소년의 소개로 이어진 짜우엄마와의 로멘스. 몇번의 잠자리. 성적인 문제는 없었다.

특수부대가 포진했던 자리에는 클레모아와 조명 지뢰를 묻었다가 파낸 흔적들이 부스럼 처럼 남았다. 흩어진 포탄피가 노랗게 반짝였다. 먹고 버린 깡통. 논둑에 개구멍처럼 다닥다닥 파놓은 개인호들. 시커먼 물소들이 주인을 잃고 논바닥에서 헤매다가 어디서 건쉽이 로케트탄을 갈기면 그 소리에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다. 텅 빈 마을에서 한가하게 벌레를 쫓던 닭. 긴급 전화 선을 가설하며 돌아다니던 통신병들. 포탄에 맞아 죽은 들소 한 마리. 배가 파편에 찢겨 뀌어져 나온 내장. 파리 때가 뻘건 창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끈끈한 죽음을 빨아 먹었다.

내 IQ는 과포화 상태의 정신적 소화불량과 영혼의 탈수증을 일으킨다.
머리가 똑똑하다는 사실은 나에게 항상 변비증처럼 뱃속이 무거운 압박을 감을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사람이 나에게 극치와 완전성을 기대했고, 학교 성적은 학년 전체에서 1등이 어야 했으며, 그래서 나는 항상 거의 평균 100점 만점에 가까운 성적표를 학교에서 받아다  집에 전해주었고, 모든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쩌다 해결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려고 했고, 아버지는 내가 검사나 판사가 되어 남들 앞에서의 으시대며 살기를 원했다. 단순히 지능지수 하나가 높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 교실에서 매질을 너무 잘해 얄밉던 물리 선생에게 내가 어려운 질문을 해서 난처하게 만들기를 바랐던 아이들은 지금 이렇게 중년 남자들이 되어 내 앞에 둘러앉아 내가 돈도 못 벌고 출세도 못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더욱 비극적이었던 것은 타인들의 예측에 휘말려 나도 덩달아 나야 자신에게 너무나 큰 기대를 품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어느 누구의 삶이라도 마음대로 골라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결국 목적이 철저히 결려된 가장 추상적인 설계에 의해서 나는 문학을 전공했고 나 자신을 숙박하는 두 높은 지능지수를 파괴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아내에게는 이상이 없다는 얘기였다. 결함은 나에게 있다는 말인가? 생식기능이 모두 두뇌로 몰려서 나는 생물학적인 기능 결핍되었고 추리하는 기능만 남은 기계인 셈이었다. 나는 한 차례 사정에서 돼지가 450억이라는 가장 많은 수의 정충을 쏟아내고 그 다음이 당나귀. 말. 소. 양. 염소. 개. 원숭이의 순서이며, 인간은 한 번에 5억 마리의 정충을 사정 한다는 사실도 안다. 5억. 하지만 나는 그 기초적인 동물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남자는 갑자기 지금 발기가 되지 않으리라고 느꼈다. 관성의 법칙, 본능의 원심작용. 그는 자신이 언제 발기가되었는지 기억 자체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내와 섹스를 했던 것이 언제였더라? 석 달 전? 넉 달 전? 그것도 기억이 잘 안 난다. 홍선자와의 만남.
"선생님은 경험부족이신가 봐. 무척 당황하신 것 같애. 오입 처음 해요?"
새벽 4시가 조금 지나서 남자는 자신의 기능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다시금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10초도 계속되지 못하는 아주 짧은 동작이었다. 남자는 지친 몸으로 여자의 위에서 잠시 허위적거렸지만 곧 힘을 잃고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여자가 휴지로 몸을 닦으면 피식 웃었다.
"웃겼어" 여자가 말했다.
" 왜 "
"뭐가 그래요? 후루룩 닭처럼"

정자의 생산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갔고. 예전에 만났던 홍선자와 대낮에 방에 들어가서 길지않은 시간, 정액이 들어있는 고무주머니를 병원에 내고, 꿈틀거리는 정자를 확인한다.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 처음으로 만났던 곳.
이야기 중에 아내가 그동안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남자는 몰랐다. 오열하는 아내.

미군이 한국군 사병 보다 23배 월급을 받았던 이유를 모른다. 한국군은 다수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들의 봉급을 벌

였는데, 서울의 군사독재정권은 이 사실을 국민에게 숨겼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전쟁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용병에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의회로 부터 비밀로 숨겼다. 목숨을 팝니다. 용병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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