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착한가족.

no pain no gain 2023. 6. 5. 11:42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서하진作

오전 10시 쯤 두 명의 남자와 여자 하나가 희숙의 방으로 들어섰다. 자주빛 계량한복을 입은 남자가 희숙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과 발가락 사이를 힘주어 누르고 종아리를 두드렸다. 아야, 아야, 희숙은 소리를 질렀다. 아프실 겁니다. 아파 야 나아요. 독기운이 다리로 번진 건데요. 지난 번 치료 때보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남자가 엄숙하게 말했다.
그는 첫 수술 후 희숙의 남편이 데리고 왔던 사람이었다. 스스로 수련을 통해 말기 췌장암을 이겨낸 사람이라 했다. 남편 선배 회사 동료의 먼 친척이 그에게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했다. 따라온 여자가 가방을 열고 주사기를 꺼냈다. 그 맑은 주사액을 그는 다리 이곳저곳에 조금씩 주입했다. 산삼 추출액입니다. 독기를 중화시키는 거지요. 1시간가량 그들이 두두리고 뒤집고 찔러대는 동안 희숙 은 죽은 듯이 눈감고 있었다. 남자의 입에서 지독한 담배 냄새가 났다. 보세요, 부기가 많이 빠졌지요? 치료를 마친 남자가 물었다. 그러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나가시죠. 얼핏 보아서는 별다른 변화를 찾을 수 없었지만 희숙의 남편은 아내가 잠든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커피를 진하게 많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자가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는 무선주전자 스위치를 올렸다. 저도, 저도. 다른 두 사람의 똑같은 청을 했으므로 그는 커다란 세가의 잔에 봉지 커피 2개씩을 넣고 막 끓여 오른 뜨거운 물을 가득 부었다. 세 사람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셨다. 지난번보다 상태가 영, 많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그때 제 말씀대로 치료를 계속했어야 하는 건데......개량한복의 남자가 말했다. 치료라는 것을 그만둔 건 아내 때문이었다. 희숙은 그가 문지르고 주무르고 쓰다듬는 것이 도무지 싫다고 했다.

오늘 사례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희숙의 남편이 물었다. 글쎄 우리 선생님께서...... 계량한복의 남자는 검은 남방셔츠를 입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라 불린 남자가 희숙의 남편을 지긋이,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어쩐지 주늑이 되는 맑고 날카로운 눈이었다. 지리산 깊은 자락에서 수십 년간 기 훈련을 쌓아온, 기에 관한 따를 자가 없다는 얘기는 이미 들은 터였다. 사례 보다 저대로 두면 부인은 돌아가십니다. 한참을 침묵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있긴 한데요...... 지금은 아연 성분을 주입하고 있는데요. 희숙이 남편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시겠지만 항암제라는 것이 독극물이에요. 몸을 망가뜨리지요. 몸을 보해도 시원찮은데 망치면서 회복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지요. 그 음성에는 독특한 울림이 있었다. 부인께서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아까 보니 몸에 정기가 살아 있어요. 의지도 그렇고 신체도 그렇고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지리산로 옹기 자니 저 사람이...... 옮기는 것이 내키지 않으시면 댁에서 치료하셔도 되지요. 제가 오는 것이 번거롭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당장 생명이 달린 일인데, 한주일에 두 번씩 제가 오지요. 댁에서 준비하실 것이 있는데, 아까 보셨지요? 산삼 열두 뿌리를 구해 주셔야 합니다. 백 년 묵은 것으로 희숙의 남편이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먼 길을 와 주시겠다니, 대단히 감사한 말씀이라고, 막 넘어오던 말을 삼키고 나니 무얼, 어떻게 물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백 년 묵은 건...... 쉽게 구할 수 없기는 하지만 협회 같은데 통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지요. 한 뿌리에 대략 1억 정도 나갑니다. 그걸 정제하고 중류하고 추출하는 선생님 고유의 방식이 있거든요. 그 사례는 따로 하시면 되고......  계량한복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부담이 너무 과중하지 않으시겠어요? 선생님께서 구매하시면 삼천 정도면 가능하실 텐데요. 다 마신 커피잔을 만 작거리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쉰이 넘었을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줌마였지만 두 남자는 그녀에게 깍듯한 어투로 윤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남방셔츠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산삼 은 직접 구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오해의 소지가 없지요. 아...... 예에......희숙의 남편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결정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미리 알려주셔야 합니다. 일정을 조정해야 하니까요.

10억이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고 있었고 작으나마 사업체가 견실했으므로 당장 그 돈을 융통하기 불가능하지 않았지만 남자들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도 그로서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여동생은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사기꾼이잖아, 오빠, 라고 말했다.  

그의 남동생은 그보다 좀 더 신중했다. 한의사 친구에게 물어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이야. 내 친구 얘기로는, 뭐 산삼이라는 게 효능이 전혀 없다 할 수 없지만...... 내가 그간 형수 병세를 죽 애기 했거든. 그 친구 말로는 지금 형수는 터미널로 들어섰다고, 그러니까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떤 좋은 성분을 주입하면 암세포가 그걸 섭취하고, 치료제일 경우 형수의 몸이 이겨내지 못하기 십상이라는 거야. 동생의 말이 끝났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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