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통곡한다.정충제作
1951년 12월 함양 법화산에 있던 수백명의 빨치산들이 국군 토벌대에 몰살당했다는 소식이다. 수도사단 1차 대공세가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몇 년 뒤에 법화산에 갔을 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허연 해골이 산 무더기처럼 쌓여 갖고 막 굴러다니던 거라.
1952년 1월 18일 눈 덮인 대성골 전체가 빨치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
가늠하기에 만여명의 대병력이 대성골에 빽빽히 들어찬 것이다.
1차로 포탄 공격. 2차로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마개가 빠진 휘발유 드럼통을 대성골을 삐라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마지막 편대에서는 소이탄을 곳곳에 날려 보냈다. 그 순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 하늘 땅 가릴 것 없이 바위돌 하나 에서 높디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 춤을......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초목들은 밑뿌리까지 홀연히 드러내면 바람에 기대어 춤을 추고,
바윗돌과 흙은 시뻘게 달구어져 이리저리 떼굴떼굴 굴러 춤을 추고,
그 푸르던 하늘은 조각구름과 어우러져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리아리 춤을 추고,
골짜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 이 땅의 절망과 사나운 기다림으로 춤을 추고 춤을 추고....."
그때 대성골은 밤낮으로 닷 세 통 안 불길에 휩싸였다.
수도사단이 2차대 공세는 1952년 1월 17일부터 시작되어 작전 기간이 애당초 7일 동안 이었으나 일주일이 더 연장되었다.
마지막 빨치산 3명은 1963년까지 살아서 지리산에 암약했다.
지리산 여행 하다보면.
피아골로 올라가는 길에 연곡사가 있고.
쌍계사 올라가는 길은 대성골이 있는데 두군데 모두 수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는 곳.
함양에 서암정사라는 절집은 전쟁으로 인해서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라고 안내문에 씌여있다.
거대한 암석을 파서 새겨놓은 그 형상들이 과연 영혼을 위로했을까 만은 사람마다 저 스스로 상처난 곳을 위로로 치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기회가 된다면 가서 깊은 울림을 느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지리산은 통곡한다. 하권을 보면서.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입장이 바뀌는 간사한 존재.
산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운데 며칠동안 오로지 소금물에 풀뿌리 몇개를 먹고,
일주일 혹은 보름을 걸어서 지리산고 덕유산등 아지트를 옮겨다니는 과정과 .
몇가구 안되는 동네에서 전재산과 다름없는 소를 막무가내로 끌고가 몇명 안되는 사람들이 식사를 위해서 잡아먹고.
식량 확보를 위해 산속에 외따로 사는 화전민이나 혹은 독립가옥에 들어가 협조를.
협박과 억압으로 조력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눈빛이 이상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일가족을 몰살시키고도 생포된 후에는 그때는 어쩔수없이 그랬다는 핑계가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같다.
1951년 12월 함양 법화산에 있던 수백명의 빨치산들이 국군 토벌대에 몰살당했다는 소식이다. 수도사단 1차 대공세가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몇 년 뒤에 법화산에 갔을 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허연 해골이 산 무더기처럼 쌓여 갖고 막 굴러다니던 거라.
1952년 1월 18일 눈 덮인 대성골 전체가 빨치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
가늠하기에 만여명의 대병력이 대성골에 빽빽히 들어찬 것이다.
1차로 포탄 공격. 2차로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마개가 빠진 휘발유 드럼통을 대성골을 삐라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마지막 편대에서는 소이탄을 곳곳에 날려 보냈다. 그 순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 하늘 땅 가릴 것 없이 바위돌 하나 에서 높디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 춤을......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초목들은 밑뿌리까지 홀연히 드러내면 바람에 기대어 춤을 추고,
바윗돌과 흙은 시뻘게 달구어져 이리저리 떼굴떼굴 굴러 춤을 추고,
그 푸르던 하늘은 조각구름과 어우러져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리아리 춤을 추고,
골짜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 이 땅의 절망과 사나운 기다림으로 춤을 추고 춤을 추고....."
그때 대성골은 밤낮으로 닷 세 통 안 불길에 휩싸였다.
수도사단이 2차대 공세는 1952년 1월 17일부터 시작되어 작전 기간이 애당초 7일 동안 이었으나 일주일이 더 연장되었다.
마지막 빨치산 3명은 1963년까지 살아서 지리산에 암약했다.
지리산 여행 하다보면.
피아골로 올라가는 길에 연곡사가 있고.
쌍계사 올라가는 길은 대성골이 있는데 두군데 모두 수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는 곳.
함양에 서암정사라는 절집은 전쟁으로 인해서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라고 안내문에 씌여있다.
거대한 암석을 파서 새겨놓은 그 형상들이 과연 영혼을 위로했을까 만은 사람마다 저 스스로 상처난 곳을 위로로 치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기회가 된다면 가서 깊은 울림을 느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지리산은 통곡한다. 하권을 보면서.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입장이 바뀌는 간사한 존재.
산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운데 며칠동안 오로지 소금물에 풀뿌리 몇개를 먹고,
일주일 혹은 보름을 걸어서 지리산고 덕유산등 아지트를 옮겨다니는 과정과 .
몇가구 안되는 동네에서 전재산과 다름없는 소를 막무가내로 끌고가 몇명 안되는 사람들이 식사를 위해서 잡아먹고.
식량 확보를 위해 산속에 외따로 사는 화전민이나 혹은 독립가옥에 들어가 협조를.
협박과 억압으로 조력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눈빛이 이상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일가족을 몰살시키고도 생포된 후에는 그때는 어쩔수없이 그랬다는 핑계가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