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소나기ㆍ황순원

no pain no gain 2021. 8. 5. 10:08
소나기.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 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 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 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 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데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는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
어깨를 자주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번 쳐다보았을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면서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또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는 없었다.
밖을 내다 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놓은 수숫단 속을 뒤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 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소녀 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수수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게 안 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우그러 들었다 .
그러나 소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 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란 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는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있는 곳까지 와 보니, 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그러쥐었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오래된 옛이야기.
가슴속에 몽글지도록 품고있는 그 소녀와 그 소년 이야기.
여름날의 소나기가 흩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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