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섣달 그믐날"
• 출가 수행승에게는 마음 붙여 몸담아 사는 곳이 제 집이요 제 고향이다. 명절이라고 해서 찾아 나설 제 고향이 따로 있지 않다. 세월 밖에서 살고자 하기 때문에 육신의 나이 또한 헤아리지 않는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지금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갈 뿐이다.
• 거처만 하더라도 기댈만한 인연에 따라 기대어 산다 . 세상에서처럼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천하가 다 내 것이 아니면서 또한 내 것일 수 있다. 구름이나 물처럼 흐르다가 잠시 멈추어 쉰다. 내 것을 지니게 되면 집착에 늪에 갇혀 흐름이 멈춘다. 그때는 이미 구름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 이래서 수행자를 다른 말로 운수라고도 한다.
• 무슨 인연으로 나는이 산골에 오두막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묵은 둥지를 떠나 새롭게 시작한 오늘의 삶을 고마워한다. 언젠가는이 껍데기도 벗어버리고 훨훨 뿌리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인생의 그 섣달그믐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아무 미련도 없이 나그네길을 훌쩍 떠나고도 그렇게 다음생으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