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순원 作 북극곰 刊 2015 出
우리의 어린 연인으로 시작되는 초등학교 졸업 30년 동창모임. 대관령 아래 가랑잎 초등학교. 초등학교 시절 가장 깜찍하고 예뻤던 여자 친구 자현이.
상상 속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도 공주처럼 가장 예쁜 모습으로 살 것 같았는데, 어쩌다 서른다섯 전에 남편을 잃고, 재혼을 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 사람과 헤어져 지금은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어렵게 살고 있는 자현. 깜찍하고 예뻤던 자현.
어쩌다 남자와 여자를 함께 짝을 지어 자리에 앉혔는데 그 아이가 내 짝이 되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마치 공주가 내 옆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지만, 그러면서도 참으로 그 아이에게 짓궂게 굴었던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 시절 그렇게 표현했다.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은봉이. 집이 너무 가난해서 구호양곡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중학교 진학이 마치 외국유학 보다 더 어렵게 여겨졌다는 오지사는 친구. 어릴땐 아무리 좋아해도 그런 내색조차 부끄러워 가슴 속으로 감추고 또 감추어야 했던 우리의 첫사랑이 바로 그녀 자현이. 은봉이는 선녀와 나뭇꾼에 나오는 이야기에 자현이는 선녀가 되고 자신은 나뭇꾼이 되는 상상을 했다고 이야기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태 동안 집안일을 거들다가 외가가 있는 삼척으로 떠나기 전에 졸업했던 학교와 자현이네 집을 찾아가지만, 먼 발치에서 마당에서 동생들과 노는 자현의 모습만보고 되돌아서는 발걸음. 이 대목에서 ‘그집앞”이 왜 그리도 가슴에 메아리지는 지!
운수회사 트럭조수로 들어가 운전과 정비를 배우면서 복싱을 배워 19세 되던 해에 강릉에서 전국체전이 열려 명주군 밴턴급 대표로 출전을 해서 1,2회전을 이기고 준결승전인 3회전에 올라갔는데, 그 복싱경기장에 꽃다발을 든 자현이가 나타나고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뿐 몸이 말을 듣지 앉아 케이오로 지고 만다.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게임에 졌다는 생각보다 이걸 자현이가 봤구나 하는 비참한 생각도 들지 않는 그런 심정. 자현을 그리워하며 사랑했던 헝그리 복서의 순정. 첫사랑.
화자로 나오는 작가 정수는 어린 시절을 육상선수로 날리던 미선이의 전화를 받는다. 교실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아이. 키가 커서 달리기를 잘했고 운동회땐 늘 계주선수로 나가곤 했던, 자기 키 높이까지 배면뛰기로 흘쩍 넘곤 했던 아이.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밥을 사겠다고.
너무나 가난해서 배가 고파서 운동을 못할 정도의 허기에 시달린 처지. 선생님의 제안으로 정수는 미선이의 도시락까지 2개를 싸서 나르는 역할을 맞는다. 미선은 5학년때 정수가 싸온 도시락에서 하얀 쌀밥에 얹혀져 있던 계란 후라이를 처음 먹어보고 이렇게 맛있는 계란도 있구나 하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둥그런 알뉴미늄 찬합으로 된 둥근 도시락을 깨끗하게 씻고 말려서 정수의 책상에 넣어두고 나중에 이런 집에 시집을 가서 하루 종일 그릇만 씻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수는 엄마도 이렇게 깨끗하게 도시락을 씻어 보낼 이런 여자한테 장가들라고 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는 걸 듣는다. 중학교 체육선생까지 나서서 체육 특기생으로 뽑고자 했으나 결국 중학교 진학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버스 안내양과 요꼬 공장을 거쳐 결혼을 해서 살지만, 지금은 키크고 날씬하고 멋진 미시 아줌마가 되어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자꾸만 먹을 것을 정수의 자리에 놓아준다. 과거로의 회기에서 미쳐 다 갚지 못한 보상의 은인이랄까?
한잔 술에 연한 빛깔로 물들었던 미선의 눈가에 다시 꽃물이 들 듯 붉어졌다.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눈동자를 따라 핑 돈 눈물이 분홍색 작약꽃 같은 꽃물 속에 반짝였다.
어린 날의 미선의 첫사랑이 정수였던 걸 몰랐던 죄. 어느새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그 물기 속에 이제까지 몰랐던 참으로 오래된 사랑하나 그 자리에….
정수는 부인과 사별하고 애 하나 데리고 홀로 사는 은봉이와 두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딸 둘과 살아가는 자현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보려고 은봉이를 만난 다음 자현이를 만나러 간다. 자현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나눈다. 그때 은봉이의 시합에 응원하러 꽃 다발을 사가지고 갔으나 게임에 져서 차마 전하지 못하고 속이 상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이야기 끝에 자현은 말한다. 후회스러운 재혼과 애들을 씩씩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 그리고 두 아이와 사는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다시 나를 채울 어떤 사랑이 필요하다면 그땐 스스로 찾아 나설 거라고.
“당신의 첫 사랑은 누구 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