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화담명월

no pain no gain 2015. 7. 2. 14:39

화담명월(花潭明月)/ 최학 作/ 나남출판 出/2005

 

송도삼절이라 알던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 명월 황진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자연을 빗대면 선죽교나 만월대를 꼽으면 송도 삼절이 어울릴 듯 한데, 어이해서 사람이 들었으며 그 또한 누구의 의도란 말인가?

박연폭포라 함은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조선의 3대 폭포라 일컫는다는데. 두 곳은 아직 가 보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  

 

서경덕의 동문 수학한 여러 문재들이 있지만,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과 우리가 알고 있는 토정비결의 이지함과 함께 공부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노고단 아래 움막을 짓고 제자를 육성하는 서기의 출생 비화부터 소나기 내리던 날. 참새를 쫓으러 논에 갔던 노비가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에서 만난 소금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동네 유지인 이평사의 후원으로 면천하고 화담의 수하에서 공부를 배우게 된 인연.

 

화두는 절에서 공부하는 스님만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글자를 붇잡고 그 뜻의 근원을 알고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다툼으로 나라가 망하고 사화를 일으키고 백성이 굶주려도 그 지향하는 권력에의 탐욕은 끝이 없는.

보수와 진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옛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임금의 스승이었던 조광조는 밑그림을 그려놓고 하나씩 실천해 가지만, 너무 성급한 성과에 욕심 내던 조급함이 그만 일을 그르치고 반대파의 음모에 싸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주는 벼슬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후학만을 양성하는 선비가 이토록 먼 현재까지 유명해지는 이유는 뭘까? 송도삼절은 누가 왜 만든 것일까?

서경덕이 죽고 난 후. 측실부인인 화자가 화담의 핏줄 응봉이라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개성에서 서기가 거처하던 지리산 함박골로 물어물어 찾아 들면서 선생의 생전에 함께 걸었던 그 발자취를 따라서 천하를 산천 유람으로 금강산을 찾아가자는 제안하면서 동행이 된다.

 

먼 길을 왔을 터 인데도 치마 저고리가 티 없이 깔끔하고 몸가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곱게 빗을 머리결. 반듯한 이마, 오뚝한 콧날, 안색이 희고 맑다. 몸매는 가냘프고 모아 쥔 두 손은 백옥처럼 희다

 

함께 떠난 길 여정에서 여자는 떨어진 노자를 벌충하는지 아니면 넘치는 끼와 한잔 술이 부족했던지 사람이 모이는 마당이면 시와 노래와 춤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만산명월이 되어 무릇 군중을 사로잡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된다.

보아라. 보아라. 이 명월과 이 물결을 뉘라서 보는 이 없건만 골 물은 산을 에돌아 흐르고 달빛은 그를 따르느니 천지간 적막에도 네가 달빛이 되고 내가 냇물이 되면 무엇을 더 채우랴. 무엇을 더 얻으랴...

 화담은 백무동에서 제자들을 앞세우고 몇 개의 짚신을 버리면서 지리산 천황봉을 오른다. 노을지는 서편을 바라보고 정상아래 굿당이라 하니 아마도 장터목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억겹의 세월 속에 숨겨온 밤하늘의 별천지를 보고 깊은 감회에 젖었으리라. 천황봉 꼭데기에서 별빛을 이고 잤으며, 저 황홀한 일출을 보았으니 누릴 것은 모두 누린 것이다.

숙지리산반야봉(宿智異山般若峯)

지리산 높고 커서 해동을 누르나니

올라서 바라보매 마음 한없이 커지는구나

깍아지른 바위가 작은 봉우리를 희롱하지만

섞이어 하나 된 조화, 그 공을 누가 알랴

땅에 쌓인 현묘한 정기, 비와 이슬을 일으키고

하늘 머금은 순수한 기, 영웅을 산출했네

큰산이 나를 위해 구름을 걷어가니

천리 밖에서 찾아온 성의가 통하였구나

 

여자. 본인이 본인 입으로 밝히는 비화. 스스로 황진랑이 한다. 이름 하나로 달라지는 시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길들여지는 모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하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을까?

우연히 합석한 이름 모를 처자가 세상을 뒤흔드는 가슴에 품은 연정의 대상자라면, 우리는 그 모습에서 환상을 볼까 진실을 마주할까?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스스로 걸어가면서 거치는 선경. 비로봉, 정양사, 표훈사, 영원암, 수렴동, 백탑동, 석가봉, 지장봉, 만경대, 귀암, 수왕성, 차일봉, 백마봉……일만이천봉의 마지막 코스는 수렴동 골짜기 백탑동의 끝 모를 높은 바위에 술에 취한 한 선녀가 한 밤중에 안개에 쌓인 듯한 높은 곳에서 흐느낌인지 짐승의 소리인지를 모를 창을하고 춤을 추다가 한마리 새처럼 떨어져 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죽기 전에 서기의 출생의 비화를 들려준 아비는 결국 면천하고 공부를 시킨 이평사였다. 인생의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에서 어디에 하나의 족적을 남길 것인지를 묻는 서사시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2015.07.02.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숫타니파타   (0) 2020.02.26
첫사랑  (0) 2016.03.08
칼의노래  (0) 2013.01.31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위지안 作/ 예당 刊/ 2012 出/  (0) 2012.07.11
Sister Carri/Theodore Dreiser作/범우사 刊/1978 出  (0) 201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