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지점
어제는 모친 기일이라 고향 선산에 성묘도 하고, 큰 누님 댁에 들러서 오느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서울을 벗어나기 전부터 밀리기 시작하더니 처음 나타나는 휴게소에 다 닿을 때까지 천천히 갔지요. 그리고 도로가 뚫리기 시작하자 시작된 레이스(?) 속도전쟁이 마치 자동차 경주를 방불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평소 눈 여겨 보지 않아서 인지 못 보던 표지판 ‘사망사고지점’ 입간판. 가다 보니 상당히 많습니다. 언젠가 뉴스의 한 장면을 장식했을 대형 인명사고의 현장. 그 유가족들은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지요.
서해안 도로가 제한속도 110Km 니까 안전속도를 계산하면 무척 빠른 상태인데, 그 속도를 준수하는 차는 화물을 가득 실은 차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좌우로 바람처럼 달려가는 차들.
예전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20여년 전 경인고속도로에서 오는데 경찰의 단속에 차를 세우라고 합니다. 뭔 일이지? 차를 세우자 단속경관 한 분이 오더니 101Km로 1Km 초과 했으니 면허증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증거물인 스피드 건을 보여 달라고 하자 보여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고요? 난 절대 과속하지 않거든요. 그러더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철수해야 하는데 5000원짜리 없냐는 겁니다. 지금은 뭔 이야기냐고 할 테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가끔은 지방에 출장을 다닙니다. 동행한 친구에게 운전을 맡겼는데 운전 습관이 좀 특이 합니다. 과속으로 막 달리다가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다시 과속으로 달리고, 그래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지금 시중금리가 2~3%정도 되니까 이자로 당신의 연봉 6000~7000정도 받으려면 원금이 얼마 정도 되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25~30억 정도 되어야 하는데, 그게 1년치니까 앞으로 20~30년 정도 회사근무를 한다고 치면 500~900억 정도 되는 값어치 있는 인간이 굴러가는데 뭔 시간이 그리 급하다고 해서 카메라 앞에서 급 브레이크를 밟아가면서 우리가 출장을 다녀야 할 일이 뭐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지요. 또한 그보다 정말 값어치 있는 급한 일이 있다면 그까짓 과속에 단속돼서 벌금이 얼마나 나온다고 쩨쩨하게 피해갈 생각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자칫 급 브레이크를 밟다가 핸들을 놓치게 되면 가다가 보이는 표지판처럼 ‘사망사고지점’의 주인공이 되고 싶냐고요. 그 다음 요? 그냥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모두 끝나고 돌아오는 길. 한적한 고속도로를 한 밤중에 오는데, 저 멀리서 강한 써치 같은 불빛이 나타나면 그 반사광 때문에 운전이 힘들어집니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이 밝은 불빛으로 달리겠다는 욕심에 타인은 피해자가 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한결 같이 그런 차들은 대부분 과속입니다.
한 밤중에 정속 주행하는 화물차들 사이를 들락거리면서 속도경쟁을 벌이듯 달리던 그 강한 써치의 불빛들이 어느 땐가는 고속도로의 길가에 서있는 망령처럼 ‘사망사고지점’이라는 입간판으로 남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모든 차 들이 평소 내 몸같이 정비된 차로 안전속도로 안전거리를 두고 정속으로 주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더 이상의 ‘사망사고지점’이라는 입간판은 늘어나지 않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