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작/ 창비/ 2007
눈 감고 먼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어린 시절 음산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둥둥 울리는 북과 쉬지 않고 두들겨 대는 꽹과리에 섞여 징 소리가 몸부림을 치면, 댓잎을 흔들거나 명주 베를 한 켠씩 풀어대던 단편극들이 웅얼거리는 주술에 엉켜 일렁이는 촛불마저 마치 살아있는 영혼의 몸짓인 냥 너울대던, 숨죽이며 지켜보던 초롱한 눈망울들과 혼백의 세상이 떠오릅니다.
빈 손을 꼭 쥐고 꼭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말 것 같은 기대감 혹은 의혹으로, 연신 비벼대며 조아리던 어른들의 영혼을 감싸던 그 신비스럽게 비춰지던 모습들이, 스타가토처럼 한 장면 장면으로 이어져 말 못하고 죽은 이의 혼백이 나와서 한 바탕 설움을 쏟아놓고 떠나가던 뒤풀이까지 생경한 모습으로 정신세계 어느 편인가에는 숨어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바리데기는 칠공주의 막내 딸로 어느 영험한 영의 세계를 넘나드는 대목에서 가끔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북한의 청진과 무산. 90년대 중반의 가뭄과 홍수 그리고 기아에 시달리면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흔적들이 300여 만 명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현실에서 살아나고자 하는 몸부림의 탈출기가 중국과 영국을 무대로 펼쳐지지만, 사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무대의 이면에는 바로 남쪽의 한국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발 맛사지’를 배워서 손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과거 이야기가 흘러 간다는 언뜻언뜻 스쳐가는 대목이 마치 굿판에서 대나무 잡고 마구 쏟아져 내리던 단어들의 흘림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던 영적 세계의 체험처럼 약간은 두렵고 암울한 미지의 세계이다.
바리는 몽환의 꿈속에서 생명수를 구하러 다닌다. 영적인 세계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한다고 하는 것. 마치 득도하는 과정처럼 자기 안의 대면하는 대화로 서천 끝을 찾아간다. 덤은 없다. 살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
“희망을 버리면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 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 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