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책도둑

no pain no gain 2009. 5. 15. 16:11

 

책도둑1,2 /마커스 주삭/문학동네/

 

첫 머리에 당신은 죽을 것이다라는 명제로 영혼을 실어 나르는 역할자가 문을 연다.

그리고 주인공인 한 소녀. 아빠를 모르고 엄마와 함께 양부모를 찾아가기 위한 기차 여행에서 6살 남동생이 죽고, 묻는 과정에서 떨어트린 무덤을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줍는다. 책도둑. 리젤 메밍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9살 소녀의 이야기.

 

2차 세계대전 속의 독일. 히틀러를 지칭하는 말 퓌러(지도자). 뮌헨의 외곽 작은 도시 몰힝 그리고 힘멜 거리에서 칠쟁이의 직업과 아코디언으로 작은 부수입을 잡는 한스 후버만과 마치 외투를 덮어놓은 작은 옷장처럼 보이는 땅딸막한, 어기적 거리는 걸음걸이의 아내 로자 후버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픈 상황.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소녀.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 로자 후버만은 소리를 지른다. 뭘 보는 거야. 똥구멍들아?

자우는 돼지다. 여성을 비하하는 말. 자우멘슈. 남성은 자우케를. 아르슐르흐하면 똥구멍이다. 일상화된 대화의 맺음말. 수입을 보태려고 부잣집 다섯 군데의 빨래를 거두고 세탁과 다리미질을 한다.

 

알파벳을 모르고 책을 보는 아이. 나도 그랬다. 학교 다니기 전 우연히 들렀던 만화가게. 너무 어린 꼬마가 아침부터 와서 만화책을 본다. 젊은 주인은 관심도 없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아저씨의 처음 배우는 기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띵똥거리던 음표들은 자리를 잡아 애수의 소야곡이나 눈물 젖은 두만강은 점차 하나의 곡이 된다.

어느 날 묻는다. 글자를 아니? 몰라요. 그럼 그림만 보니? . 그럼 앞으로 자유롭게 책을 봐라! 나는 만화방에서 자유를 얻었다. 지금도 흘러간 옛 노래의 전주곡이 흘러나오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형체의 기타 치던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열 살이 되어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아이. 알파벳을 배우러 작은 아이들 틈에 끼어 곤혹스럽고 효과 없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사학년 때 그만둔 아빠, 삼학년 때 그만둔 엄마. 그러나 아빠로부터 글을 배운다. 지하실 벽면을 페인트로 칠하고 한 단어씩 쓰는 연습으로 책 속의 길을 찾는다.

 

열 권의 책을 훔치는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커다란 무대 속에 리젤 메밍거의 몇 년간에 걸친 유년의 이야기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은 영혼을 실어 나르는 역할자가 분주하게 영혼들을 정리하면서 끝이 나지만, 그 난리통에도 지하실에서 자신의 책을 만들던 리젤은 기적처럼 살아난다. 매 순간 평화롭지 못하고 긴박하게 몰리던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준 잔잔한 감동의 시간.

2권이라 분량도 꽤 되지만 영혼의 휴식 같은 귀중한 시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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