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인의 선택/ 신영철/도서출판이마운틴/2008
세월의 흐름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잊고 있던 88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성공을 올림픽이 끝날 무렵 뉴스에서 보고 그냥 막연하게 대단하다고 생각 했던 추억들이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 넘어 갈 때마다 고산 설벽이 되어 점점 솟아올라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 온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 그래서 처음 길을 내는 사람들. 사는 길이 어디 산 뿐이랴! 험난 한 사회 문화의 어려운 길을 뚫고 오르는 사람들도 그때 히말라야-로체 탐험대 못지 않은 교훈을 안고 살아가리라.
우리가 삶에서 인생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화두를 던지듯 여기 21인의 산악인 들에게 산은 무엇인가 하는 화두에 대한 대답도 재미있다.
정말 인생을 그렇듯 산을 정복한 사람이 있을까?
그냥 산은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설악산에서 340m 토왕성 빙벽을 대상으로 솔로, 자유등반, 클라밍다운, 연장등반, 야간등반등을 하면서 모방이 아닌 창조로써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준비를 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려면 지속적인 몸 만들기에 조금의 나태함이 없다.
한국에서 부쳐진 장비와 식량을 네팔 카투만두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옮기는 트레킹코스에 길고 긴 여정의 109명의 포터들을 동원한 캬라반이 이어진다.
지리-루크라(2800m)-창마-준베시-마니딩마-카리콜라-슈르케-파크링을 거쳐 남체바잘(3440m)-탕보체(3680m)-페리제(4210m)-로부체(4930m)-베이스캠프(5400m)까지 14일이 소요되는 대단원.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산행의 시작인 것이다.
에베레스트로 가는1캠프(6050m)-2캠프(6450m)-3캠프(7250m)-4캠프(8050m)를 빙벽에 설치하고 마지막 공격조가 남지만, 이 과정에서 캠프와 캠프 사이를 많은 식량과 장비를 운반하는 일은 대원들이 묵묵히 나누어서 한다.
고산증의 여러 가지 증상들을 겪으면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극복하고 60여 개의 알미늄 사다리를 연결하면서 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하고 아침 해가 아이스풀을 비추기 전에 루트공작을 끝내야만 세락의 붕괴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공격조는 베이스 캠프에서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려 어둠을 뚫고 극지법으로 봄베의 연결 레귤레이터를 점검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고산병을 극복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대원들에게 최후의 공격명령을 내리고 노심초사 지진과 눈사태 등의 자연재해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미 등반 안전과 성공기원을 위한 라마제를 지냈지만, 밤새 꺼지지 않는 향불을 피워놓고 신의 가호를 바란다.
고산지대에서는 이미 성층권의 영역을 넘어선 고도 8000m 이상의 극한지대에서 오직 자연인의 의지와 체력으로 신의 품과도 같은 세상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다.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1270리터의 산소통을 메고 태극기를 들고서 느끼는 환희는 어떤 것일까? “칙~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습니다~ 칙”
뒤에 따라오면서 럿셀해 놓은 길을 픽스로프 루트를 개척해간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오던 프랑스 브아벵팀은 또 얼마나 얄미웠을까? 하지만 정상 정복 후에는 활강스키 전문이던 부아벵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행글라이더를 이용한 활강으로 뻔히 보는 앞에서 단 몇 분만에 몇 일을 고생해서 생사를 걸고 내려가야 하는 길을 순식간에 떠나는 걸 바라보는 마음은 또 어땠을까? 그러나 그런 전문가도 1991년 베네수엘라 엔젤폭포에서 998m짜리를 페러글라이딩으로 하강하다 추락해서 사망하게 된다.
거벽에 매달려 생리적인 해결이 어려움은 생사를 나누는 순간도 체험해야 한다고 한다. 에베레스트를 하룻만에 오른다는 네팔의 영웅 바브리치 세르파는 안전벨트를 풀고 볼일을 보다 추락사 했다는 대목에서는 뭔지 서늘한 느낌이 온다.
1,2,3차 공격을 성공하고, 로체로 가는 3캠프(7300m)-4캠프(7950m)-로체(8516m)로 가는 또 다른 공격을 성공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국을 향해 돌아가는 마음은 얼마나 즐거운 트레킹이 되었을까?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어렵다는 에베레스트-로체의 등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원정대에게 자신의 가슴에 남아있는 다시 도전해야 할 산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남기고 덩달아서 에베레스트-로체를 다녀온 기분이 흡족해진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