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상상 속의 야생마가 산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국을 뒤 덮은 벚꽃축제의 향연 속에 빠져있습니다. 가는 곳 마다 백색의 꽃잎들이 하나비처럼 흩날리는 꽃 비를 뿌리고 있지요. 벚꽃이 피고 지는 것도 다 스케줄이 있다는데, 딸네미가 와서 함께 여의도 한 밤 투어를 했으나 주차 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이 배짱 좋은 사람들이 연결되던 모든 도로에는 길 따라 주차를 해 놓아서 우리는 그냥 차만 타고 한 바퀴 돌아보고 오고 말았지요.
주말에만 일어난 산불이 20여건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를 심어보신 적이 있나요? 높은 산 깊은 골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 위해 들인 정성과 그걸 키워내서 푸른 산을 만들기까지의 그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안다면, 아무리 큰 유혹이라 할지라도 산불의 일 부분인 산에서의 흡연은 상상하기도 어려 울 듯 합니다.
눈 뜨자 마자 밥이 넘어가냐고 묻지만, 아무 때나 먹어도 참 맛있는 식사. 건강하게 태어나고 생각과 몸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 만으로 늘 행복한 사람입니다.
버스를 타고 잠깐 눈을 붙인 듯 한데 휴게소에서의 휴식. 잠깐 둘러본 작은 동산에는 벚나무 백목련에 둘러 쌓인 그리스 군 참전 기념비. 이국의 하늘아래 소중한 영혼을 내려 놓고 쉬고 있을 낮 선 이방인들의 전쟁의 그날. 참전을 앞둔 불안과 의혹의 눈빛으로 두런거리는 새벽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마음을 다듬어 합장하옵고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비나이다.
단양을 돌아가는 듯 했는데 도담삼봉을 거쳐 신단양교를 지나면서 역시 활짝 핀 가로수 길로 이어지던 천둥동굴 입구를 지나면서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적에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자 동굴 순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버스는 천둥 매표소에 멈춘다.
부상 방지를 위한 스트레칭을 하고 길고 긴 산행을 위한 각오를 다지면서 초입부의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맑은 물줄기를 바라보며 거슬러 비로봉을 향한다. 적당한 태양. 잘 닦아놓은 등산로. 어느 곳인가는 자리 펴고 앉아서 흘러가는 흰 구름아래 계곡을 바라보며 시조라도 한 수 읇조린다면 하는 신선의 동류감을 느끼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하다.
가다 보니 몇 사람 앞질러서 선두그룹이 됐다. 길 양쪽에 쭉 뻗은 낙엽송. 더러 굵어서 아름드리가 되지만, 어느 틈엔가는 작은 것도 끼어 있어 상구 형이 말한다. 어찌 한날 한시에 심었는데도 저리 차이가 날까? 심어진 자리가 인생을 결정하나? 세상사가 어찌 공평하기만 하리오 만은 그래도 그 작은 나무를 선택한 목수는 훨씬 작게 자란 재목으로 그 치밀하고 단단한 나이테에 걸맞게 쓰임새를 가려 쓸 줄 아는 혜안이 있는 안목을 우리는 부러워한다. 속이 꽉 찬 남자라는 교훈을 얻는다.
예전 등산로는 이미 사라졌고 몇 열로 서서 행군이라도 할 정도로 넓게 다듬어진 시멘트 포장길. 더러는 너덜길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산은 산인지라 올라가는 경사로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가는 길은 충청도 단양. 넘어서면 강원도 영월. 그리고 우리는 경상도 영주로 간다. 예천까지 해서 3도 4군을 끼고 있는 산. 지리산이 3도 5군을 안고 있어 더 넓은 품이지만, 예전 선조들은 아마도 과거라도 한 번 볼라치면 이 산을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다가 갈증도 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오이를 우적 거리며 씹어서 먹고 발길을 재촉한다.
둘러보는 산하가 참 절경이요 이미 마음 속에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산다면 산신령처럼 늙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마지막 휴게소를 지나 잠시 쉬고 약수터에서 감로수 한 잔 마시고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을 베어버리지 않고 전리품처럼 남겨 그 둘레를 나무로 깔아 전망대로 만들어둔 주목의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이제 다 오른 능선길. 비로봉 가는 길에는 언제부터 쌓였는지 알 수 없는 얼음골이 녹아서 일부는 조각품처럼 파여있고, 더러는 질퍽거리면서도 얼음길이 이어진다. 이방인이 날린 무전에는 길이 위험하니 아이젠을 준비하라고 하자 들려오는 대답은 웃음 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겨울산행도 무사했는데 지금의 얼음쯤이야 가소롭다는 뜻?
드넓게 펼쳐진 고원지대 평원.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목책으로 둘러쳐서 자연생태계의 회생을 바라는 실험포가 열려있다. 심호흡 한번하고 아직 긴 동면의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철쭉의 무리들이 몹시 추워 보인다. 소백산하면 잊지 못할 바람. 가슴 속까지 뻥 뚫릴 정도의 겨울 휘 몰아치는 바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경까지 꺼내 쓰고, 한눈에 봐도 고무조각을 잘라서 길을 낸 계단이 저 멀리 연화봉 천문대까지 직선으로 보이는 비로봉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소백산 정기를 듬뿍 받아 건강하시라고 서로 덕담을 주고 받으며 대피소로 점심을 해결하러 간다.
주목을 자연상태로 보호하기 위해 쳐둔 철망이 어찌 보면 주목이 도망갈 일도 없을 텐데 가둬둔 형상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 일까? 정상의 개활지에 몇 마리의 야생마가 뛰노는 그림을 상상하면서 능선에 따라 신갈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여타의 산에를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암벽이라든지 힘들게 깎아지른 듯하게 꺾어 오르는 릿지코스 하나 없이 순탄하게 이어지는 계단 길. 더러는 새로운 시도로 전나무를 심고 내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인 곳도 있어 우리 후손들이 이 산을 오를 때에는 하늘을 덮은 전나무 숲이 우거져 푸른 산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느 틈엔가 훈풍에 부는 봄바람 가득한 날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질 철쭉축제의 날에 온 산에 피어있는 화사한 색깔만큼의 산꾼들로 뒤덮여 눈을 즐겁게 하고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 철쭉들이 합창하는 바람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중간쯤에서 한 번 더 휴식하고 도착한 연화봉에서 그간의 노고도 씻고 얼려온 막걸리도 나눠 마시면서 속속 도착하는 일행들과 전망대에서 바로 보이는 우리가 지나왔던 비로봉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감회에 젖는다. 날이 맑은 달 밝은 밤이면 꿈을 찾아 별 헤인다는 소백산천문대를 뒤로하고 이제는 희방폭포를 향해가는 길.
등고선의 길이가 좁고 촘촘한 것만큼의 급경사로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가면서 나누던 이야기 속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산을 사랑하고 즐겨 찾던 이들의 건강에 대한 그간의 생각들. 고혈압이 있었지만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고 산에 오르던 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삶의 이면에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잘 알지만, 계속되는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정기적인 치료와 안정 그리고 데이터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 철칙임을 다시 한번 상기 한다. 건강. 그 믿을 수 없는 약속이여!
산을 내려서는 거리만큼 어느 결에 들리는 시원스런 물소리와 다래넝쿨이 우거진 길을 따라희방사 부근에 도착. 폭포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늘어진 소나무 풍상하며 길고 긴 세월 언제나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희방폭포의 물줄기를 보면서 저 아래 시퍼런 물 속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스쳐간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탐방로를 따라 물길로 이어지던 그 언저리에서 이제 다 왔는데 세족이나 하고 갑시다 하고 3명이 물가로 내려서 그 잊을 수 없는 차가움에 등골을 싸하게 흩고 지나가던 그 오묘한 떨림으로 또 한편의 소백산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