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속리산

no pain no gain 2009. 3. 23. 16:18

속리산. 물 소리에 귀를 씻다.

 

전날 들었던 일기예보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해서 오늘도 빗 속을 헤 메이면서 다니겠구나 하고 작은 우산을 하나 챙겼다. 화북 분소에 도착하는 동안 연무처럼 흩어져 내리던 비는 그치지 않는다. 안내소에 들러 안내지도 한 장 챙겨 나오니 모두 떠나고, 이감사님, 김진일 이사장님과 맨 후미를 따라간다. 올 들어 처음 보는 개나리 꽃도 반갑거니와 산수유 꽃과 닮은 생강나무 꽃을 보면서, 지리산 섬진강 줄기 따라 피어나는 매화-산수유-벚꽃의 자연스런 회상으로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봄 눈이 녹아서 인지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겉옷을 벗고 반 팔 티셔츠 차림으로 문장대를 향해 오르다 보니 조금 빨리 걸은 탓도 있지만, 흐르는 물에 시원하게 씻고 땀을 훔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봄이라 하는데 아직은 두텁게 얼어 붙은 얼음을 보면서 마치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처럼 느껴진다고 김주선부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천 팀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원정대 출발 일이 내일(23)이다. 무사하게 임무 완수하고 간절하게 빌어 본다.

 

향수.

인간은 그 누구나 고유의 색과 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젊은 여인네의 은근한 살 냄새는 수밀도라는 표현으로 잘 익은 복숭아에 비교를 한다. 예전에 내가 알던 선배 한 분은 무척 애연가 이셨는데, 지론은 항상 이성적인 금연보다는 감성적인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에 무게를 두고 주말마다 등산으로 폐 기능의 완전회복을 주장하던 분이셨는데, 지나친 흡연이 문제였던지 폐암으로 고생하다 일찍 금연하지 못한 한 움큼의 후회만 남기고 망자가 됐다.

 

앞서가시던 분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따라가다 보니 적당히 나이 들어 풍기는 할아버지 냄새(?)와 지난 숙취와 흡연으로 인한 복합적인 향기롭지 못한 향기(?) 가 땀 냄새와 섞여서 몸 주변에 마치 물결의 파장을 이루듯 퍼진다. 뒤 따라가기가 부담스러워 조금 쳐져서 걷다가 작당한 지점에서 앞질러 나간다. 한 참을 걷다 전과 같은 현상이 또 나타난다. 함께 오신 일행 분이신가? 우린 산악회와 다른 팀이 뒤섞여 있다.

 

나 역시도 중년부라 누군가의 예민한 코에서는 나도 스펙트럼처럼 분류되어 환영 받지 못할 향기가 날 수 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책으로 매일 땀을 흘리고 스스로 정갈 하게 하려는 노력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노화현상. 노인네. 그러나 적은 수분 섭취와 땀 흘리지 않을 만큼의 활동은 스스로 노인네의 틀에 가두는 방법임을 알아서 늙어서도 어린 손자들에게 냄새 때문에 기피 인물이 되지 않는 방법을 본인이 찾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안개 속을 헤매다 들어선 곳 문장대. 작은 표지만이지만 무척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 세월 풍상에 깎여도 그 의연함을 잃지 않는 자태에 있다. 200m 가야 문장대에 오를 수 있는데, 고생한 수고로움에 비해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않는 것은 속세를 떠난다는 속리산을 찾아왔지만, 몸만 오고 마음은 속세에 두고 온 탓인지 3번을 문장대에 올라야 극락세계를 갈 수 있다는 전설이 허허롭기만 하다. WBC 중계를 궁금해 하던 어느 님이 알려준 소식은 일본을 7:0으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은 발길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한국, 한국인이란 무엇일까?

 

항상 구름 속에 묻혀 있다는 곳. 세조가 올라와 강론을 펼쳤다는 데서 문장대라 바꿨다 했는데, 오늘 우리가 다녀간 곳은 역시 운장대가 아닐련지요?

이제 천왕봉(1057m)을 향해 능선 길을 타고 가야 하는데, 내린 비와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에 곤죽이 되어버린 등산로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통에 바짓가랑이와 등산화가 가관이 아니다. 어릴 적 이러고 다니면 엄마한테 혼 났는데...... 그래서 봄철 산행에 필요한 장비가 미끄러짐을 대비한 스틱과 바짓가랑이를 잡아주는 스패츠, 언제 필요 할 줄 모르는 아이젠이 필수가 된다.

 

정말 안개 속을 헤메이면서 걷다 보니 오늘도 혼자다. 키 높이만큼 자라난 조리대에 자꾸만 손이 스치는 바람에 장갑을 끼고 엄청남 크기로 다가서는 커다란 바위. 사진을 찍어도 희미한 영상만 나타날 뿐. 그 멋진 모습은 다음 기회를 남겨 두기로 한다.

어느 지점에서인가 군대에서 배웠던 오감이 자극을 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여러 사람이 잡담을 하는 가운데, 역시나 담배를 물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한 표정으로 급하게 피워댄다. 그러고 보니 잠시 쉬어갈 만한 장소라면 어김없이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태워버린 산이 몇 개인지요? 어느 날 아무런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 된 국립공원을 상상이나 한다면 과연 그날 피웠던 담배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산을 사랑한다는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지 않았을까? 몰라서 안 하는 것과 알면서 못하는 것은 분명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꺼다.

 

불어오는 바람은 반팔 티를 입은 팔에 닭살이 돋아 외투를 걸치고 분명 맨 후미를 자처하고 온 처지라 보이지 않는 일행들이 앞서갔거니 하고 한적해진 등산로에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호사스런 발길에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이 절로 흘러나온다.

비로봉을 거쳐 석문을 지나면서 천왕봉으로 갔다가 역시나 안개 속에 갇혀버린 세상구경을 뒤로하고 돌아서 삼거리로 오는 도중에 전망 좋을 듯 한 명당에 앉아서 지인과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칠 즈음에 온몸이 떨려오는 상태에서 후배와 동행을 이뤄 하산 길로 접어든다. 이곳 정이품 송의 수령이 600여 년이라 하지만 더러 만나는 소나무의 그 늠름함은 곧게 뻗은 줄기 하며 만고풍상의 시련을 이겨낸 수백 년 된 훌륭한 나무들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타 지역을 가보면 이렇듯 커다란 석면은 선인들께서 곱게 놔두질 않는고 뭔가를 새기거나 부처상을 만들어 놓았던데, 속리산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재질이 변성 퇴적암이라서 그런지 군데군데 깊게 파여지고, 석별로 부서지는 형편이라 무언가를 조각하기에는 부적절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더러는 길어진 경사면을 돌계단처럼 깎았으나 잘 깎여진 부분도 있으나 좁고 작은 각도로 파서 모서리 부분이 뭉개져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상태에 놓여 있는 곳도 많다.

 

상환암 주변에는 절에서 겨울 양식으로 쓰기 위한 작은 밭들이 있고, 석문을 지나면서 점점 크게 들려오는 물 소리는 어느 부분인지 양쪽 골짜기 물길이 만나는 곳에 잠시 앉아 지필묵이라도 꺼낼 양이면 선인들처럼 멋들어진 시도 한 편 나올 법 하다.

세심정 휴게소에 들르기 전에 이미 마음은 씻어지고 귓속은 맑아져 옮을 느껴 흘러 내려가는 계곡의 폭이 넓어졌다 좁아지는 즈음에 낙차 져서 떨어지는 폭포소리는 어느덧 걷혀가는 안개와 함께 마음이 맑아짐을 느껴진다. 그래서 세심정인가?

은폭동 폭포와 세심정에서 자리잡은 동료들을 만나 맑은 빛은 아니지만, 동동주 한 잔과 해물 파전에 흘러간 옛 노래 나 어떻해 가 퍼져 따라서 흥얼거리게 한다.

먼저 하산을 고하고 법주사에 들러 절 마당의 부티 나는 느낌을 가진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천연 기념물인 망개나무의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내려왔으나 잎 떨어진 겨울나무 숲에서는 미쳐 보지 못하고 주차장에 도착. 이미 모두 다 와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선두란다. 아니 그럼 백여 명의 앞서간 일행들은 어디 갔을까?

 

버스를 타고 오는 길목에서 만나 정이품 송. 사람도 나이 들면 탈모가 진행되듯 더러 가지를 많이 잃어버린 채로 봄을 기다린 듯 하다.

고속도로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제 막 떨어지는 태양의 조화로움이 눈부심을 떨쳐버린 붉은 원으로 남아 송신탑에 걸렸다 산 봉우리에 숨었다를 반복하는 그 모습에서 내가 음악을 안다면 코라아환타지 일광 곡이라도 한편 작곡해 보고 싶은 감흥을 안고 무사 귀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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