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자를 사랑한 남자

no pain no gain 2008. 10. 21. 14:15

남자를 사랑한 남자

----------------고 원용복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위원장을 추모하며

 

얼마 전 꿈 속에 그가 나타났습니다.

그 동안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인사하러 왔노라고 합니다.

벌떡 일어난 밤중. 앉아서 곰곰이 과거를 회상합니다. 달은 무척 밝았습니다.

새벽으로 기울면서 별이 지듯이 어느 날 그가 갔습니다. ! 님은 갔습니다.

 

그의 고향은 거제도. 유학을 위해 마산공고 시절 4.19를 목격하고 열혈 청년으로 거듭납니다. 이 땅에 민주 투사가 한 명 탄생하는 계기가 됩니다.

해군하사로 월남전에 참전, 제대 후 에는 자동차 제조업에 발을 들여 놓고, 그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반 민주적인 노사관계에 스스로 깃발이 되어 펄럭입니다.

 

기억 하시나요? 88올림픽 즈음해서 물길처럼 타 올랐던 노동운동의 현 주소에는 언제나 비춰지는 화면 속에 대우자동차 노사 분규가 해외 토픽으로 떠 올랐던 사실을?

 

2번의 위원장 직선제 당선으로 대한민국 노동사의 물결을 바꿔버린 사람.

함께한 시간과 기억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습니다. 기획을 담당하며 많은 일들을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해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정년 퇴임 후에도 정치 판에 뛰어든 후배들이 그의 지명도를 높이 사 부르면 언제든지 마다 않고 뛰어와 몸소 도와 주시던 모습.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제에 작은 집과 텃밭을 가꾸며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늦게 발견된 폐암으로 인해 수술은 위험하니 항암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진행을 합니다.

 

경과가 좋아서 희망의 불꽃이 보이는 듯싶었는데, 좀 과한 약 성분으로 인해 운전하다가 의식을 잃고 진행을 하다가 시골길의 중앙선을 넘어 전신주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내고 주위 사람에 의해서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갑니다.

 

부러진 치아 때문에 영양섭취가 부실해 지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악화된 병세. 약해진 저항력으로 인해 폐렴이 오고,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면서 검버섯이 얼굴을 덮고, 급해진 상황에 거제에서 앰블런스를 타고 서울 아산병원에 중환자실로 입원.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진의 보살핌 속에 가끔씩 깨어나기도 했지만, 혼수상태를 반복하면서 가족들에게 통보하기를 몇 차례.

 

내가 병문안을 갔을 때 목소리를 알아보고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쓰면서 손에 힘을 줘서 잡습니다. 산소 공급을 위해 목에 뚫린 호스 때문에 말을 해도 들리지 않지만, 이미 마음으로 다 알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주체 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 의식이 잠깐 돌아와 내 이름을 쓰고, 배가 고프다는 의사 표시를 합니다. 난 이제 회복이 멀지 않았다고 힘 내라고 격려를 하면서 병실을 나섭니다.

그게 고인과의 마지막 상면의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긴박한 연락으로 영안실 예약이 멀지 않았다고.......

한 낮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환몽으로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사모님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합니다. 유언 한마디 없이 그리 허망하게 가셨다고, 달 반을 중환자 실을 지키면서 그토록 염원을 했는데, 인사 한 마디 없이 가신 당신이 야속하다고, 옛 동료가 왔을 때는 의식이 깨어나더니 어찌 그렇게 매정 할 수 있냐고 하십니다.

 

3일 동안 장례를 치르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어찌 연락이 되었는지 전국적으로 예전에 활동가의 사후 치고는 모두가 놀랄 만큼의 문상객들이 이어지고, 국가 유공자의 지위로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지겹도록 오와 열을 맞췄는데, 죽어서까지 열 지어 잠들어 있습니다.

 

남자를 사랑한 남자. 자신을 태워서 빛을 밝히고 촛불처럼 살다간 사람. 그 사람은 갔지만, 그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촛불 하나씩 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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