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계룡산. 산신령을 만나러 떠나다.

no pain no gain 2007. 9. 20. 09:53

 

계룡산. 산신령을 만나러 떠나다.

 

태풍. 나리가 온다는 소식은 귓등으로 흘리고 컴컴한 새벽. 동녘을 보니 초승달 곁을 떠나지 않는 샛별의 초롱 한 눈빛이 뭔 비가 내리겠어? 하는 맘과 그래도 비가 온다는데 우비라도 챙겨가자 하는 엇갈리는 갈등 속에 어둠을 뚫고 출발이다.

 

대악 산악회의 깊은 역사만큼이나 창립기념식을 한다는 날.

하필이면 이렇게 내리는 빗 속에서 야외 행사가 걱정이라는 상임진과 전국의 3개 지역의 합동행사를 거창하게 준비해서 시작은 좋았는데, 전년에 세운 계획에는 오늘 비 온다는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산행코스를 줄여 남매 탑까지만 전진하기로 약속하고 계룡산 동학사 길 자체가 시작부터가 돌길인지라 자칫하면 물기 머금은 돌 계단에 미끄러져 안전사고가 나기 십상이니 안전산행을 당부한다. 숲길로 들어서자 높은 나무에 한 번 부딪쳐서 내리는 빗물이 얼마나 세차게 �아지는 지는 실감나지 않지만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는 요즘 성능 좋다는 7.1채널보다 더 실감나는 천연의 스테레오 사운드의 완벽한 이퀄라이져 기능이 더해진 자연의 오케스트라다.

 

질컥이는 등산로. 이미 반쯤은 물에 잠긴 돌들을 조심스럽게 밟으면서 진행을 해도 보이지 않은 속옷은 땀에 잦고 보이는 곳은 빗물에 젖어 비를 맞으면 추위를 느낄 만도 하련만 오늘의 산행은 정 반대다.

 

지난 번 사량도 산행 시에는 장모님 생신과 작은 아이 군입대로 306보충대에 데려다 주고 오는 관계로 참석을 못해 한편 남도 절경인 옥녀봉의 능선을 걷고 싶은 미련이 남았으나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있으리라는 위로의 마음과 군 입대한지 일주일도 안된 아들의 훈련소 모습이 이렇듯 비가 내려도 훈련은 쉬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지어미의 생각으로 대화의 중심에는 아들이 있다. 윤여사. 너무 걱정 마시오. 잘 하고 있을 테니!

 

삼거리에 올라서 관음봉을 향하지 않고 남매탑으로 방향을 잡아 자나가는 길에 산을 뒤 덮은 안개는 지척도 보이지 않은 만큼 깊게 내려 이쯤이면 산신령께서 지팡이 짚고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나 이 혼란의 시기 중생의 바른 길을 인도해 줄 법도 한데, 여럿이 모여서 가니 수즙음 많은 산신령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쩜 총각 혼자서 이런 날 산행을 한다면 처녀귀신이라도 나올 법 하다는 음산한 분위기다.

 

드디어 남매탑에 도착. 드문드문하게 놓인 돌 거북의 목 위에 앉아 쉬는 이에게 거북이 목 디스크 걸릴라 하는 농담과 천년 전에 얽힌 전설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수도를 하는 상원스님 앞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아가리를 벌리며 신음을 하길래. 스님이 호랑이의 목에 박혀있는 뼈를 빼 주었더니 며칠 후 그 호랑이가 제 딴에는 보은을 한답시고 상주에 사는 처녀를 물어와 스님은 그 처녀를 집으로 돌려 보내려 했지만, 그 처녀는 오히려 부부의 연을 맺기를 청하여, 불제자의 신분으로 부부의 연은 맺지 못하고 남매의 연을 맺어 서로 비구와 비구니로 생활하다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어갔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전설 따라 삼천리 속 이야기 지만 요즘의 절에서 하는 몇몇의 행태를 보면 속세는 떠났다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리는 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기념 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보니 예전에 신입사원시절 엔진부장으로 계시던 김두영고문님(창원공장)을 사반세기 만에 다시 만났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건강하시고 이런 행사에 직접 참여해서 만나보니 반가움이 배가 된다.

 

이제는 하산 길. 더 미끄러운 바위 돌 조각을 밟으며 다시 만난 계곡과 폭포의 아우성이 어우러져 천천히 서두를 것 없이 내려선다.

그 이유인 즉 내려가면 시간이 너무 많아 할 일이 없다는 계산이다.

 

동학사에 들러 빗길에 사찰관람을 하려 했으나 높이가 1미터쯤 되는 고려시대 제작되었다는 삼층석탑과(아마도 어디 암자에 있던 것을 문화재라고 해서 이곳으로 옮겨온 듯 하다 문제는 입장료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부속 건물들은 대부분 공부 중이라는 표찰과 함께 문을 닫아 두고 있어서 다른 것 들은 보지 못하고 역시 오랜 역사의 전통을 말해 주는 것일까 더러 비구니 들의 우산 쓰고 종종 걸음 치는 뒷모습만 보인다. 어디 중생의 눈으로 보아 절 집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것뿐이랴! 그곳 그 장소에서 시공을 초월한 그 의미 이상의 것!

 

이미 마음 속에는 부처의 깊은 가르침을 알아서 깨달음으로 느끼고 가라는 깊은 통찰의 뜻이 함께 있으리라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하산해서 버스에 앉아 양말까지 젖은 채로 몸을 말리다가 식사하러 가는 도중에 만난 상구 형 일행들이 더덕 막걸리를 놓고 인생을 논하면서 비 내리는 가을 풍경을 구경하는 자리에 붙들려 나이 들면 몸에서 육즙이 빠져 나와 뼈와 껍질만 남는다는 강론을 듣고 부길 형에게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인 것 같지만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는 논지를 끝으로 식당을 향한다.

 

식사와 강평 그리고 말미를 장식하는 추첨에 모두 웃고 즐기는 한마당에 오늘의 산행이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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