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오래된 그 옛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5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심장순 선생님이 셨는데, 그분은 학과가 끝나고 나면 청소를 마치고 나서 종례를 할 때 마다 조금씩 시간을 내서 교과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반에서는 전혀 공감 할 수 없는 "나는 북한의 간첩이었다" 라든지 아니면 전혀 읽어 본 적이 없는 역사의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잠깐씩 아주 잠깐 씩 들려 주셨는데.....
한번은 세종 비 소헌왕후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었다.
세종은 태종의 아들로써 양녕, 효령, 충녕대군으로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셋째에 해당되기 때문에 왕이 될 확률은 극히 희박한 상태 였었다. 이미 첫째인 양녕이 세자로 책봉된 상태이어서 아무리 아우가 똑똑하다 하여도 임금이 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여하튼 세종은 양녕의 폐 세자로 인하여 조선의 4대 임금으로 등극을 하게 된다.
그의 부인은 소헌 왕후 심 씨 였는데, 이때 영의정으로 있던 아버지 심온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명 나라에 사신으로 떠나게 되고, 이때 소헌왕후의 숙부인 심정은 도청제로 있었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강상인과 대화도중에 " 영의정은 자리는 높으나 맡은 사무가 없고 좌의정은 으레 이(吏), 례(禮), 병(兵) 우의정은 호(戶), 형(刑), 공(工)의 자리를 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병조판서를 겸임 할 수 있는 좌의정이 좋다" 라는 것을 빌미로 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좌의정 박은과 병조좌랑 안헌오가 상왕이었던 태종에게 결국 심씨 일가가 병권을 장악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요지의 밀고로 결국 옥사가 벌어지게 되고 강상인과 심온은 네 차례의 압슬형 (옥금에 참나무 곤장을 끼워 넣고 그 무릎 위에 큰 돌을 올려 놓은 형벌)을 받아서 무릎 뼈가 으깨어져서 기절과 혼미한 상태가 되고, 결국 강상인은 고문에 못 이겨서 허위 자백을 하게 된다.
심정은 고집을 부려 자백을 하지 않았는데, 전 이조참판 이관과 대질 심문을 하는데, 이관은 눈치를 보면서 혹시 허위 자백이라도 하면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까 하여 비겁하게 허위 자백을 하게 되고 결국은 소헌왕후의 숙부인 심정은 죽음을 받게 된다.
한편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영의정 심온은 잘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명나라로 피신할 것을 제안 받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와서 같은 방법으로 압슬형을 받고 반죽음이 되어 수원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박은과 안헌오의 밀고가 반 이상은 거짓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외척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국 사돈인 심온 에게 처형을 명한다.
이때 심온은 죽으면서
앞으로 대대손손 심씨와 박씨와는 원수 지간이니 자손은 절대로 혼인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500 년이 더 지난 지금에 까지도 심씨와 박씨는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 처연하게 분위기가 가라 앉은 가운데 해주던 모습이 선 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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