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이윤기 作.
신학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소설가가 된 화자.
시골로 작업실을 옮기고 천여평의 빈터가 남는다.그리고 나이들고 농사를 짓지못해서 묵혀둔 땅 천 평도 삼십년의 계약으로 빌린다. 나무를 심기로 마음먹고 찾아간 양재동 나무시장에서 대학선배를 삼십년만에 다시 만난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목련. 대나무를 심고자한다.
그러자 대나무는 수목한계선이 서울이라 안된다고 한다.
경제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하자 그럼 왜 심느냐고 한다. 그냥 나무가 좋다!.
"백 년, 이백 년 세월이 흐르면 볼만해지지 않겠어요?"
"천년 이천년 세월이 흐르면 더 볼만해질 테지. 좋다. 시간에다 다는 방울 같은 것이다. 나무라는 것이."
"시간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설사 그것이 쇠 방울이라 할지라도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은방울도 되기도 하고 금방울로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세월을 잘못 보내면 쇠 방울은 녹슨 쇠 방울로 밖에 되지 못할 테지. 세월에 주머니를 채워 놓으면 그것은 빈주머니라 할지라도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주머니가 은돈으로 차기도 하고 금돈으로 차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의 방울을 매달지 못했고 주머니도 채우지 못했다. 당신 말이야,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왜 그 오랜 세월이 치지 않고 불리는 줄 알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에 방울을 달지 못한 자들의 노래야."
"저는 1947년생 입니다 저의 몸은 1948년생인 대한민국 보다 조금 더 오래된 것이지요. 1950년에 터진 6.25 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지요. 4.19도 5.16도 제 몸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월남전의 기록도 저의 몸 아주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몸은 세월의 눈금으로 그리 오래 남아있지 못합니다. 선배의 몸이 그렇듯이요. 다른 눈금이 필요합니다. 나무. 제일 오랜 꿈입니다."
'조통수'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군대 살이 할 때 우리가 잘 쓰던 말이지, 왜 군대살이를 경험한 남성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군대살이는 자지로 만든 퉁소를 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있으면 특별히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훈련병에서 이등병으로, 이등병에서 상등병으로, 상등병에서 병장으로 계급이 오른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군복을 벗는다.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도 국 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군복을 벗으면서 시간에다 방울을 매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방울을 매달 지 않았다. 매달 줄 몰랐던 것이다.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 만큼 잔인한 노래는 없다. 세월 로부터 진급을 보장 받지 못하는 인간들, 세월 로부터 퇴직금도 연금도 약속 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누구인가? 시간의 방울을 달지 못한 인간들이다. <봄날은 간다>를 가장 잘 부르는 인간들은 아마도 이런 인간들일 것이다."
다음날 봉화로 내려갔다. 세상에. 골짜기 하나가 그의 숲이었다. 70만평이라고 했다. 자기 손으로 심은 삼백만 그루라고 했다. 봄날이 총알같이 지나가라고 할 만도 했다. 인부들과 트럭 여섯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는 반 이상이 8년생이었다. 8년생으로 골랐다. 메터 세콰이아 이백, 목련 이백, 목련 이백, 느티나무 이백, 구상나무 이백, 은행나무 이백그루를 이틀 동안 캐내고, 뿌리를 싸매어 트럭에 실었다. 봉화를 떠나던 날 나는 그에게 나무 값과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번호를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 인부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나무를 심을 동안 잘 먹여주고 잘 재워주어야 한다. 임금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주는 나의 작은 선물이다. 트럭 운임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 좋겠다. 부담스러울 테니까. 나무도 나의 선물이다. 양재동에서 만났을 때 내가 당신에게 어쩌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당신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 말 기억할 것이다. 당신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 사실 욕심에 앞서서 나무들을 밀 식했다. 밀식한 나무는 원래 우듬지가 밉다. 당신에게 선물하는 나무들의 우듬지도 미운 편이다. 서로 햇빛 많이 받으려고 키만 덜렁 클 뿐 옆으로 뻗어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팔렸으면 좋겠지만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팔리지 않았다. 당신 덕분에 중간중간 나무를 솎아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당신에게 도움을 준 게 아니라 사실은 당신도 내게 도움을 준 것이다. 방울 단것을 축하한다. 잘 키워라. 올해는 숲 노릇을 못할 것이다. 뿌리내리느라고, 내년 봄에 초대 한번 해주라. 숲이 되거든 그 숲길을 걸으면서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러봐라. 느낌이 조금 다를 것이다.
나흘 걸려 그 나무 모두 심었다.
이 글이 가슴에 콕 박히는 이유는 나도 작은 산을 가지고 있다. 편백나무 삼천. 낙엽송 삼천.
퇴직후에 산을 가꾸고 자연인처럼 살기 위해서 삼십년전에 마련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자연인이다 >프로만 열심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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