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딱다구리와 비들기.

no pain no gain 2024. 1. 26. 09:30

딱다구리와 비들기.
창밖 수양버들이 실처럼 휘 늘어져 잎새는지고 빈가지만 바람결에 진양조 가락처럼 흔들리는 오후.
까치도 다녀가고 왜가리도 다녀가고.

어디선가 날아온 오색딱다구리 한마리.
가지를 이리저리 탐하면서 껍질을 쫀다.
툭툭 떨어지는 껍질들.
한참을 쪼다가 다른 쪽으로 옮기고 다시 쪼고.
한끼의 식사가 걸린 진지함이 숭고해 보이는 순간. 몇몇 군데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벌레를 찾는 걸 보면서 저 딱다구리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저리 열심히 쪼아대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과 그런 탐지 능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

책에서 본 내용은 새장에 갖힌 새들도 구만리 먼 하늘길과 푸른 창공을 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는데, 새장속에 풍족한 먹이가 그런 생각을 잠재우는 건 아닐지?
오래전에 그려진 옛 그림속의 새들을 그릴때의 화가는 그 새의 마음과 우는 소리까지를 그려 넣었는지?

얼음이 얼기전에는 기러기와 청둥오리의 몇몇이 날아와 물위에 떠있는 부유물을 거의 흡입하다시피 먹으면서 이동하는 걸 봤는데, 이제는 모두 얼어서 다른곳으로 갔겠지.

어느 공원 매점 야외 식탁에는 뭔가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비둘기들이 삼삼오오 종종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람들 눈치를 본다.
마치 '너는 나에게 뭔가를 줘야할 의무가 있지 않냐'는 식으로.
그런데 주변 플래카드에는 비들기와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말고 자연에서 섭취할수 있도록 하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약 10년을 산다는 딱다구리.
이 추운 계절에 미리 저축해둔 먹이도 없이 야생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겨울나기가 애처러워 보이는데, 혹여 기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은 뉴스에서 먹을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혹여 죽어서는 딱다구리로 환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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