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칼의 노래

no pain no gain 2023. 12. 24. 10:22

칼의 노래/ 김훈 怍/문학동네 刊/ 2012 出

어릴 적 읽었던 난중일기는 승전보에 가슴 뛰는 영웅전 정도였다.

깊이 이해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나이 50 줄에 든 이순신장군의 막중한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자연인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국운이 걸려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마다 숱한 밤을 뒤척이고 식은 땀을 흘렸으며 어깨뼈에 박힌 총탄의 심각한 후유증과 복통과 코피로 쩔쩔매는 인간적인. 순수한 인간적인 고뇌와 고충을 안고 자기 자신과의 홀로된 싸움에서 이겨 내야만 했던 격동의 7년 세월이 매 순간마다 손 내밀면 잡힐듯한 영상으로 펼쳐진다.

일본의 천하 권력을 손에 쥔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내적 불만을 다른 방향에서 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아시아 패권이라는 명제를 걸고 명나라로 쳐 들어가서 4백여주를 일본의 풍속으로 바꾸고, 억만년쯤 일본제국의 정치를 시행하려는 야욕으로 조선 침략의 구실을 삼아 조선을 점령한 후에는 각 제후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들려는 구상이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사는 3번의 큰 획으로 나눌 수 있다.

1592년 4월 14일 제1선단 6만 병력이 부산에 상륙, 부산성을 부수고 봄놀이 가듯 올라 가다가 충주전투에서 신립장군의 참패로 인한 파죽지세로 한양에 도달하는 5월 2일까지 기간에 싸움에 지기만 하는 상태에서 이순신은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원균의 우수영과 합쳐서 5월 7일 옥포만에서 해전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적함 26척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전멸이라 함은 한 척도 남김없이 완파시켰다는 승전이다. 다음날 적진포 전투에서 11척을 격파하고 승전한다.

옥포만의 전투는 임진년에 벌어진 여러 해전의 전형적인 모델을 이룬다.

한번의 출전에서 여러 포구를 돌며 적을 소탕하는 방법인데, 적의 포진에 관해서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없이 연안을 광범위 하게 수색해서 적을 찾아내 소탕하는 싸움 방식. 이 수색 섬멸전은 임진년의 여러 전투에 적용되었던 이순신 함대의 기본 전술이 된다. 적의 기지에 상륙하지 않고 육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상륙전은 위험을 감내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한다.

29일은 돌격장 이언양이 개발한 기상천외한 거북선을 처음으로 투입하여 전쟁을 치른다. 29일 동진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를 차례로 돌며 적의 함대 70여척을 부순다. 이 출정은 무관선배인 원균의 정보제공에 의한 성과다.

7월6일에는 역사에 남는 한산도 대첩에서 학익진을 펼쳐 승전한다.

견내량과 안골포 깊숙이 포진한 적의 함대에 소수의 함대를 보내서 유인하게 하고 한산도 앞바다에서 방향을 바꿔 학익진을 펼쳐 적선 47척을 격침하고 10여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올린 전법인데, 무수한 반복 훈련의 결과로 장군의 의지대로 함선이 움직이지 못하면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전술인 것이다.

안골포에서는 내항 깊숙이 들어가 적이 나오지 않자 종렬진으로 내항 깊이 찔러 들어가 여러 번의 파상 공격으로 적선 42척을 부순다.

한산대첩의 승리는 전쟁 전체의 국면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적들은 남해안 제해권을 상실하고, 바다를 통한 보급이 끊겼고 퇴로가 막혔다. 적의 서해 우회를 좌절 시킴으로써 조선은 전라, 충청, 황해를 지키고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서해를 통한 지휘계통이 확립되었다.

8월 27일 웅천에 도착. 경상 해안 쪽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9월1일 새벽 물운대에 도착. 부산 동래 해역을 수색. 부산포에 정박중인 적선 500여척을 발견. 장사진으로 돌격해 들어가 6차례 전투로 150여 척을 격침시킨다.

임진년이 저물고 계사년이 된다. 올해도 돌고 돌아 계사년이다.(다시 읽어보니 10년 세월이 흘러갔다.)

한산도로 수영을 옮기고 장기 대치전에 돌입한다. 전쟁은 욱하는 성질에 화가 나서 달려드는 싸움이 아니다. 전쟁계획서를 세우면 동원되어야 하는 군대도 문제지만, 절대적인 것이 군수물자다. 철저한 BOM에 의한 상세 내역서가 뒤따르지 않는 전쟁은 이미 패배를 준비하는 것이다. 미군의 BOM 내역서를 보면 식량과 탄환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여성의 생리대와 손톱깎이 몇 개가 필요한 품목인지가 작성되어있다. 이길 수 밖에 없는 전쟁. 그 시작은 철저한 준비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책을 보면 청나라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로서 영국과 프랑스에 전함을 주문하고 군수물자 생산 계획을 세우고 심지어는 군용으로 쓰일 말의 생산을 어느 나라에서 수입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와 군비를 위한 채권 발행에 대한 내용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순신의 수군은 참혹한 식량난을 겪는다.

수군 중에서 병들고 부상 입은 자와 노인을 귀향조치하고 질병으로 육백여 명이 죽고 병사는 보충되지 않고 흉년과 왜적의 노략질로 마을은 불타고 백성은 난민이 되어 흩어지고,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린 정도의 참혹상을 겪으면서 서해로 가는 길목인 한산도에서 목진지를 틀어 막고 세월을 보낸다.

적들은 소문만 들어도 무섭고 무시무시한 이순신장군이라는 이름만 들려도 기가 죽고 도망칠 궁리가 먼저 앞서는 상태로 남해안 부산을 부근으로 하는 진지를 쌓고 토굴을 파고들어가 몇 년을 버틴다.

이때 이순신장군은 굶주리는 병사들의 식량과 전쟁에 관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지속적인 첩보활동과 순찰과 경계를 소흘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밤에 잠을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면서 깨어나는 악몽과 책임감에 편할 날이 없었다.

한산도가(閑山島歌)

寒山島月明夜(한산도월명야): 한산섬 달 밝은 밤에
上戍樓撫大刀(상수루무대도): 수루에 혼자 올라 큰 칼 불끈 잡고
深愁時何處(심수시하처):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에선가
一聲羌笛更添愁(일성강적경첨수): 들려오는 피리소리, 이내 시름 더해 주네

한 부대에 해라는 이름을 가진 피리를 잘 부는 이가 있어서 달빛이 아름답고 삼사가 울적할 때는 이순신 장군이 피리를 불게 했다고 한다.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넓은 바다에 가을 햇빛 저무는데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하늘 높이 날아간다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 근심스런 마음에 잠 못 자는 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달은 무심코 활과 칼을 비추네

두번째의 큰 틀은 전쟁이 없는 5년의 한산도 시절과 사헌부의 이간질로 시작된 숙청이다. 대기하면서 보낸 세월을 선조는 질타한다. 1597년 정유년이 되자 적장 가토의 머리를 가져 오라는 선조의 명을 어겼다는 죄명을 걸어 서울로 압송 고문을 하다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 선조는 이미 불타버린 종묘와 사직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몇몇 선왕들의 왕능을 파헤치고 유골과 유물을 약탈하거나 시체를 태워서 어지럽게 해놓은 상황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적장 가토의 머리를 올려놓고 술을 따르면서 죄를 빌고자 했으리라.

중죄인의 죄를 다룰 때에는 압슬형이라고 해서 다리를 묶고 큰 돌을 얹어 놓아서 무릎 뼈가 탈골 되고 다리를 쓰지 못하게 고문을 하는 게 보통인데, 장수로서의 훗날을 도모하려 했음인지 큰 고문은 하지 않아서 출옥해서 백의 종군으로 남해까지 내려가는데,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간다. 가는 길에 모친 상을 당하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지만, 초상을 치르러 가지는 못한다.

선조와 병조판서는 권율을 중개로 해서 이순신의 후임이던 삼도수군 통제사 원균을 부추겨서 전쟁으로 내몰아 원균의 함대는 7월 16일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전함 3백척이상이 깨지고 삼도 수군이 전멸하는 패전을 한다. 5년을 버티던 이순신 의 한산도 통제영을 궤멸시킨 것이다.

세번째 큰 틀은 이 책이 시작되는 칼의 노래의 부활이다.

다시 3도수군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남아있는 전선 12척과 120명의 군사를 수습한날 남원은 조선관민 사천과 명군 삼천이 전멸되고 함락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만인의총. 칠천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9월16일 울둘목이라 불리는 진도 앞바다에서 명랑해전을 벌여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한 전략 전술과 해저에 쇠사슬을 엮어서 썰물 때 배가 도망가지 못하게 쇠줄을 당겨 적들의 배가 서로 부딪혀서 깨지는 전법을 구사한다. 양반가에서 거둬온 두꺼운 솜이불 100여채를 물에 적셔 배의 난간에 걸쳐서 조총의 탄환이 뚫지 못하게 하는 전법과 장기전에 대비한 수분 보충의 지혜로 박을 실어 전투에 임해서 330여척의 함대를 13척으로 맞아 적선 33척이 깨지고 나머지는 도망가기 바쁜 전세를 뒤집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정유재란의 국면 전환과 서해 통로를 봉쇄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해가 바뀌어 1598년 무술년. 이순신의 나이 쉰넷.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철군을 주문하고 급사로 죽는다. 명군 진린과 일본군과의 철군 협상이 이뤄지는 마당. 왜장은 퇴로를 열어주면 전리품으로 수급 이천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자 진린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도 병법의 하나라면서 이순신을 설득하려 하지만, 이순신은 죽인 적들의 머리를 모두 가져 가라는 협상으로 전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명예를 걸고 노량해전에서 적선 200여척이 격침되고 50여척이 도주하는 가운데,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해전이 육전과 다른 점은 바다에 뜬 배가 격침되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데 있다. 시체와 부서진 배의 조각들이 바다 가득 떠다니는 상황. 총통과 함포가 천지를 뒤 흔들고 화약 냄새와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바다는 온통 핏빛으로 물든 아수라의 지옥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전황을 보고하기 위해서 적의 시체를 작두로 목을 잘라 소금으로 염장을 해서 가져가야만 전과가 인정되는 전리품의 과정으로 순서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칼의 울음 소리를 듣는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냉엄한 세계. 죽여야 할 것인지 살려야 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바로 칼이 노래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의 칼에 새긴 염원대로 피로 물들인 강산을 알고 갔을까?

201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