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百花). 가와무라 겐키作.
1994.4.15.
피아노 레슨을 마친 후, 아사바 씨와 서로 부모님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싱글맘으로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부모님과 소원해졌다고 털어놓같은았다.
아사바 씨의 부친은 그와 학자였다. 아사바씨가 다섯 살 때, 부친은 가족이 아니라 외국에서 하는 일을 선택했다.
" 아버지가 유럽으로 떠날 때 배를 배웅하러 항구에 갔었어요. 엄마는 옆에서 울면서 손을 흔들었죠. 그때 엄마와 나는 버림받는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의 의자에 앉은 채 말했다.
"뱃고동이 울리고 배가 출발하는데, 색색의 종이테이프가 갑판에서 떨어졌어요. 하늘에서 춤추는 일곱가지 색의 종이테이프 너머로 배가 보였는데, 군청색 바다로 나가는 그 광경이 참 예뻤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슬픈감정과 아름다운 광경이 뒤섞이더니 어느새 배를 향한 애착으로 바뀌었어요. 좀 이상하죠"
식탁 의자에 앉았던 나는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슬픈 감정이 아름다운 광경과 녹아들어 사랑으로 바뀌는 일은 실제로 있다.
아사바 씨와 둘이서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는 듯한 대화만 나눴다.
남반부와 북반구를 제각기 탐험한 두 사람이 만나, 지구의 모든 것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종종 들었다.
5.3
누군가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면 거북했다.
싱글맘이인 나를 동정해서 나오는 다정함 같아서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사바 씨에게서 그런다정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었다.
고베에서 일하게 됐어.
아사바 씨가 갑자기 말했다. 침대 위에서, 내 몸을 뒤에서 끌어안고,
둘이 만나기 시작한 지 반년 지났다.
왜? 언제? 나는 어쩌면 좋아?
묻고 싶은 말이 잔뜩 떠올랐으나 나는 그저 응,하고 대답했다.
새로운 대학에서 교수로 초빙되었다는 것, 아내와 자식은 이쪽에 두고 간다는 것, 작은 아파트를 빌릴 예정이라는 것, 아사바씨는 그런 말을 혼잣말처럼 내귀에 속삭였다.
아사바씨는 눈치가 빠르거나 말빨이 뛰어나거나 행동이 약삭 빠른 사람은 아니다. 고지식하고 순수한 소년 같은 사람이다.
한편, 천성적으로 누구에게나 정이 없어 보이는 면도 있었다. 그거 말하는 건 어딘지 건성이어서 본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그의 순수한 박정함이 잘 맞았다.
아사바 씨는 마지막 같이 같이 가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하는 것은 나다. 식사 메뉴, 데이트 코스, 만나는 시간. 그리고 내가 결정한 것에 반드시 좋다고 말해준다. 나를 받아준다. 아마 그는 내가 헤어지자고 해도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아사바 씨와 함께 있다.
평생 그 아이와 둘이서 살아갈 줄 알았다. 이 외 딴섬이면 만족한다고 믿었다.
고즈넉이 닫힌 작은 항구에 흘러들어온 하얀 배.아사바 씨가 배 위에서 나를 불렀고, 나는 뛰어올랐다. 그배가 어디에 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95.1.17. 고베지진. 이후의 일기는 없다.
엄마는. 자꾸만 집을 나가고,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을 사다 나르고.
치매의 진단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받아아리셉트와 레미날을 먹는다.
결국 보호소로 간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