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가리의 단편소설 '벽'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당시 벽을 사이에 두고 옆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음증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만, 소통의 부재가 이토록 무서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경악할 뿐입니다.
20살 청년은 도대체 '천사같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요. 벽을 사이에 두고 그녀가 '누군가와 쾌락에 겨운 신음 소리'를 내는 동안 절망에 빠진 청년은 참지 못하고 커튼 줄을 뽑아 목에 감았지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만일 옆방 처녀와 청년의 벽 사이에 작은 창, 아니 바늘만한 구멍이라도 있었다면 그 방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알아차리고 그녀도 구하고 자신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요. 인간이 만든 벽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이더군요. 스스로가 세워놓은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철저한 타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쌓아놓은 벽에 둘러싸여 외로움과 고독으로 몸부림 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고봉을 오르는 일만큼이나 험난한 예방입니다. 나는 때때로 고산병에 걸린 사람처럼 인간관계에서 멀미를 느낍니다.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면 자신을 안으로 닫아 걸고는 상대가 그것을 열어주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관계'와 내가 바라는 '관계'가 다른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안에서 잠근 문은 스스로가 열어야지 밖에서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안에서 닫아걸고 누군가가 열어주길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