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7. 이병주作
겨울은 빨치산의 대적이다.
' 나폴레옹의 대군은 겨울에 졌다. 우리는 겨울을 이겨야 한다.'
사령관 이현상의 말이라고 들었지만, 어차피 살아남으려면 우선은 겨울을 이겨야 했다. 그런 까닭에 있어서의 '월동준비'는 곧 생사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또는 상부에서 월동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대원 개개인이 자기의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월동준비'란 말이 캐치프레이즈가 된다.
보급 투쟁을 나가 방한모 하나 얻으면 '월동준비를 했다.' 구두 한 켤레도 월동준비', 내의가 생겨도 물론 '월동 준비 했다가 된다' 심지어는 길에 깔린 똥을 밟지 말라는 것도 '월동 준비'란 말로 대신한다. 그 무렵이면 '월동준비를 했느냐.' 가 인사가 된다.
남부군은 독특한 방법으로 혹한을 견딘다. 천막을 칠 자리가 결정되면 우선 그곳에 길다랗게 골을 판다. 그리고 거기에 모닥불을 피운다. 체온에 눈이 녹아 발싸개는 물론 바짓가랑이까지 흥건히 물에 젖는데, 그 모닥불에 둘러앉아 옷을 말리고 발싸개를 말린다. 불이 어지간히 타고 나면 커다란 돌을 주워다가 골 속을 채운다. 돌은 불에 달아 밤중까지 식지 않는다. 그 위에 천막을 치고 양쪽에서 골에 발을 두고 두줄로 누어 잔다. 바짝 붙어 자기 때문에 서로의 체온으로 좌우가 따뜻하다. 맨 가장자리는 한쪽이 비어 눈바람이 들이치기. 때문에 특히 담요. 한 장을 준다.
행군하다가 모닥불의 옷을 말리고 발싸게를 바싹 말려 그 까실까실해진 발씨개로 발을 감을 때의 따뜻하고 개운한 감촉은 지락至樂에 속한다. 인간의 행복이란 뜻밖에도 가까운 곳, 대수롭지 않은데 있다.
예전에 본 책들을 다시 읽는 기분은.
더러는 기억에 남지만 전혀 생소한듯한 이야기를 접할때는 새로운 책을 접하는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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