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종이 피아노"
가난한 집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한 5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친구와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피아노 학원에 따라 가 조그만 방의 구석에 앉아 있곤 했다. 친구가 건반을 두드리면 서툰 소리 위로 도처의 방들에서 물려 나오던 그 선명한 음들이 너무도 좋았다.
마침내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시위.
"안 된다니까 우리 형편에"
얼마 뒤 나는 문방구에 가서 십원을 주고 종이 건반을 샀다. 책상에 내 귀퉁이를 압정으로 붙여놓고 학교에서 간단히 배운 대로 노래를 연주했다.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고개를 까딱거리며 신나게 쳤다. 시위를 하거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그저 아이다운 낙천성이었을 뿐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내가 종이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때가 그 시절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중2.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피아노를 배우라고. 괜찮다고. 별로 배우고 싶지 않다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내 책상에 1년도 넘게 붙어 있든 종이 건반에 대해서, 그걸 볼 때마다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마음에 대해서.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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