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모던보이

no pain no gain 2020. 7. 6. 17:48

흰 새 같은 손이 내 와이셔츠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조그만 부리로 하나씩 단추를 풀기 시작했을 때 난 떨지 않았다. 유키코에 자줏빛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느꼈던 감정은 터질듯한 흥분도, 잘 해보겠다는 의지도,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 불륜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도 아니었다. 유키코의 하얀 목덜미를 멍하니 바라보게 만든 건 일정에 향수였다. 실제로 여자랑 자본것이 오래되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런 불쌍한이유 때문이 아니라 난 그냥 그리웠던 것이다.

부딪히면 아프지만 그래도 손잡이처럼 귀여운 골반이 달린 여자 엉덩이 그냥 그 자체, 낮설고, 촉촉하고, 고통스럽고, 불경스런 그 느낌을 내가 아직도 소년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가질 수 있을지. 과연 지금도 그럴 수 있을지. 사방 벽에 벌레의 화석들이 연대기적으로 차곡차곡 붙어 있는 그 작고 더러운 여관 방 안에서, 불륜의 여왕과함께 나는 여자를 알지 못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자 했던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평화의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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