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作/문학동네 刊/2011 증보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외딴방’이 있다.
한여름 날 내리던 내리쬐던 뜨거운 태양. 갑자기 준비 없이 내리던 소나기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비. 하지만 그 비에 젖고 나면 가슴 시리고 온 몸이 떨리는 기억에서부터 맑고 고운 가을 하늘 이래 숲 속에 숨겨둔 은밀한 작은 공간이라든가 하는 저마다의 외딴방.
저자의 외딴 방은 70년대 혹은 80년대 구로나 영등포에 존재했던 인간의 삶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던 쪽방 혹은 벌집으로 불리던 저자가 겪었던 37개의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던 방. 그 중 하나에 기거하던 삶의 파편에 대한 기억이다.
전쟁을 겪고 태어난 베이비붐 시대에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던 세대들이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에는 숱한 경쟁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지만, 그들의 그 고단했던 삶의 결과물에는 속칭 한강의 기적이라는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하나마다에 피와 땀과 노력과 희생의 산물이 그대로 베어있는 것이리라!
시골에서 태어나 삶의 현장을 찾아 도시로 찾아 든 노동자. 그들 중에는 맏이 혹은 또순이로 불리던 자신을 촛불처럼 태워 희생양이 되면서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혼신의 힘을 쏫던 그 막중한 책임감과 절망적인 가난이 양 어깨를 짓누르는 젊은 날의 노정이 있다.
16살의 저자는 직업훈련을 받고, 나이가 어려 취직이 안되자 취직을 위한 타인의 이름으로 나이를 속이고 전자회사 일원이 된다.
그리고 못다 이룬 꿈을 향한 여정으로 일과가 끝나면 작업복을 교복으로 갈아입고 산업체 특별학교를 다니면서 노조 간부들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은 알지만, 그 뜻대로 행동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만큼의 간격에 대한 갈등을 감내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운다.
저임금이라 불리던, 지금의 현실에 비춰봐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임금과 부족했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살인적인 생산량.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참기 힘들었던 비 인간적인 노무관리.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자본가 들의 악랄하기만 한 착취. 그러나 의식이 깨지 않는 노동자들의 사이에서는 작은 임금이나마 직장이 최선의 생명줄 인줄 알고 마치 놓치면 끝 모를 낭떠러지기에 떨어지는 걸로 포장한 사용자의 논리에 길들여져 자기 자신이 갇혀있는 곳이 또 다른 외딴방이라는 걸 모른다.
생산 현장의 콘베니어 벨트 위에서 쉼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인간이 기계화 되어 같이 돈다. 전자제품 생산 현장에는 납땜 연기 속에 납 중독으로 누렇게 뜬 얼굴과 봉재공장의 자욱한 먼지 속에 부족한 잠을 이겨내지 못한 졸음에 손가락까지 꿰매버린 슬픔 속에는 인간적인 대우와 산재처리는 고사하고 모든 잘못을 근로자의 책임이라는 틀을 씌워놓고 그 나마의 직업을 잃어야 하는 그 과거 속을 걸어 나온 이들의 공통된 슬픔이 녹아있다. 어찌 이런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있으랴!
세월이 흘러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세계제일의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 기업의 이면에는 알 수 없는 수 많은 유기화학물질 속에 쌓여 언제 어느 영향 하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심장발작이나 백혈병의 범주 또는 이와 근접하게나 유사한 질병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 불법인줄 알지만 속도위반이나 신호를 위반하지 않으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지 못할 생과 사의 외줄타기 갈림길을 언제나 선택해야만 하는 도시의 택시 혹은 버스 운전자의 삶. 먹이사슬의 맨 위 포식자가 되어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The winner takes it All) 자본을 위한 자본가들의 세상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젊은이들의 생존경쟁의 뒷줄에 선 이들은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제나 기간제 근무로 비정규직화 되어가고, 그 빈 공간을 파고드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삶의 자리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작업 현장이 존재하고 비 숙련공의 결과물로는 사회가 이상한 나라로 가는 부실 공사나 어느 부분인가 엉성한 기형적인 세상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 사람들의 가슴마다에는 또 다른 형태의 외딴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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