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한길사간. 1990년. 최명희작)을 읽고
남원 출신이십니까? 그럼 남원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고향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겹겹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흰 구름이 걸려가는 지리산 자락과 언제나 가슴을 철철 흘러 내리는 요천수, 그리고 눈을 들면 마주보이는 남원산성, 아하! 그 교룡산!
혼불의 첫 장을 열면 인생의 중대사를 논하는 청사초롱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친근한 울타리 대숲. 대숲에 부는 바람.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고 긴 겨울 밤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이야기의 설정은 잔혹했던 일제의 통치 말기 쯤 과 남원군 사매면 매안 마을로 오수와 서도의 중간쯤에 자리한 개화기의 양반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상민과 노비, 천민의 삶과 어우러진 질퍽한 수제비 같은 이야기다.
질퍽한 남원 사투리가 여과 없이 펼쳐진 마당에 간간이 백과사전을 무색하게 하리라 만큼의 자세하게 수록된 고증. 혼사와 장례의 절차에 대해서라면 오히려 혼불의 도움을 받아야 하리라 만큼의 잘 정리된 절차, 일본의 악정, 주인공의 줄기를 타고 흐르는 청암 부인과 그 며느리 율촌 댁, 장손 강모와 그의 아내 효원으로 이어지면서 시종 면면히 흐르는 긴장과 애 간장이 타는 안타까움을 섞어 이어지는 근간을 흐르는 맥이다.
복에 겨운 가진 자의 항변인가. 양반지주 만석꾼의 자재 강모는 원하던 음악으로의 길을 제지 당하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사촌형의 영향으로 어설픈 사회주의자가 되어 사촌형과 함께 조선을 떠난다. 진정으로 의 평등사회를 꿈꾸면서 가자. 봉천으로
대간을 흐르는 청암 부인은 그의 손자 강태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죽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례. 결국 한 평생 이승에 살다간 삶 속에서 이루고 남겨주고 가야할 것은 무엇인가? 우뚝 솟은 거인의 발자취를 좆아 범부의 명경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서 묻는다.
어릴 때 부르던 맹오리. 정월 대보름날 대나무 장대를 쌓아서 불놀이 하던 그 추억의 단상이 바로 망월(望月 )이란 달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비는 의식의 하나란 걸 알려주는 불놀이. 이백면 누른대 가 연산 때의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면의 인물 유자광이 바로 남원 왕치 출신이란 것도 알았다.
간간이 간식처럼 터져 나오는 잡다한 이야기들이 긴장으로 이어진 줄거리 외에 맛 볼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 었다.
작은 아쉬움이 있다면 탄탄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잘 맞지 않은 년대와 언젠가는 쓰려고 했겠지만 남겨두고 쓰다만 해방 후의 이어지는 변화의 세월이 여기에서 더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서 미완의 소설로 남고 말았다. 왜냐하면 작자 최명희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남기고 혼불처럼 세상을 떠났으니 남원에 인연을 둔 그 누군가 가 다음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