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가슴을 흩어 내리는 가을 바람이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하는 크레바스에 매달린 산악인의 심정으로....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고 그냥 떠나는 발길은 토요일 오후.
만리포의 바닷바람 속에 모두 떠나간 겨울의 길목을 지키는 고운 모래에 길고 긴 발자국을 남기면서 울부짖는 파도 앞에 서 있었다.
당신의 가슴을 / 그렇게 두둘겨도 / 꿈쩍하지 않는 / 아니 꿈쩍하지 못하는 현실이 / 오히려 비현실로 비쳐지는 / 꿈꾸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그리던 스케치와는 동떨어진 / 그저 통속적인 / 너무나 통속적인 세상을 안위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자신이/ 방향을 잃어버린....../ 그리고 탈피하지 못하는 / 내 안의 꿈꾸는 비상을 /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며 / 오늘도 우화의 꿈을 안고..../
일요일엔 노고단의 산 허리를 감싸고 도는 눈 속에 서 있었고요. 내리는 첫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환호성은 같았지만, 속 마음을 모두가 모두 다른 소망을 안고 있었겠지요.
허연 머리를 웅크리고 앉은 당신 모습에서/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옛 이야기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서러움을 / 언제나 따뜻한 가슴으로 부여 안아주던 / 그리움이 녹아 드는 포근함이 있습니다./
꼭 등산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추운걸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체감온도 영하 20도는 그리 쉬운 산행은 아니었었다.
하늘을 뒤덮고 휘돌아 흐르는 구름 속에서 인생의 파노라마를 느껴가며 귓전을 스치우는 바람결에 훌훌 털고 뒤 돌아서야만 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나왔지만, 지금도 그 산언저리 휘감아 돌던 바람소리는 내 가슴속에 맴을 돕니다.
후기: 양귀자님의 천 년의 사랑을 다시 읽다가 문득 갈바람 소리가 그리워져서 가을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산 아래 펼쳐지는 가을과 아직 겨울을 준비하지 못한 산 능선의 공존의 계절에서 자연의 이정표를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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