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양녕대군. 세자와 바꾼여인.

no pain no gain 2009. 4. 7. 15:04

양녕대군 세자와 여인을 바꾸다.

 

조선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이가 태조 이성계라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무신들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난국을 문치로 바꾸려는 노력을 태종은 꿈꾸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된 나라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던 태종. 하지만 조상 대대로 다혈질의 피를 타고난 양녕은 아버지의 그 깊은 뜻을 모른다.

음주가무를 즐기고 활쏘기, 말타기, 사냥 등에 빠져 호연지기의 호탕한 성격은 이미 세자로 책봉시킨 후라 태종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여기에는 태종의 고민이 있었는데, 왕자의 난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칼로써 권력을 쟁취한 뒤라 장자가 아닌 태종을 명나라에서의 문제 삼음과 더불어 다음세대에서는 그런 피 비린내 나는 현상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미 몇 차례나 성상의 심기를 흐트러트린 후라 근신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양녕의 주변에는 후일 나라의 왕이 될 것을 예견하고 그 후광을 보려는 무리들로 꼬이기 시작해서 음률을 좋아하는 세자 주변에는 악공들이 강변에서 밤새워 놀거나 달이 이슥할 즈음에서야 돌아갈 때면 기생 초궁장을 끼고 세자궁으로 돌아오거나 함께 어울리던 무리의 집으로 가서 동침을 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려 말부터 왜구격퇴에 큰 공을 세운 원수 곽선 (개성부 판사)의 첩이었던 기생 출신의 어리. 양녕의 주변에 있던 이오방이 자색과 재예가 뛰어난 어리에 대해 유혹의 미끼를 던지자 강한 호기심을 드러낸 양녕은, 전북 순창에 살던 어리가 친척을 만나러 서울에 유하는 동안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듯 그녀가 머무는 집을 찾아가 한 밤중에 어리를 내 놓으라고 독촉한다.

양녕이 누구인가? 차기 대권을 약속 받은 세자저하가 아닌가? 잠을 자다가 일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급히 나오느라 단장하지 못한 어리를 처음 본 양녕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이 한 눈에 반해 납치하다시피 말에 태워 어느 오두막에서 동침의 긴 밤을 보내고, 이튿날 어리가 꽃 단장을 하고 은은하게 비치는 불빛아래서의 모습에 양녕은 넋을 잃을 지경이 된다. 어리는 이 확실한 담보물(?)에 지금까지의 남편 곽선은 이미 지나간 남자로 치부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얼마나 좋았으면 떨어지지 않고 살다가 아이를 낳고, 태종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나 아비의 마음으로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헤어져라. 그리고 사건에 관계되었던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양녕은 어리를 잊지 못해 태종 몰래 다시 찾아 나서고, 어리와 함께 하다가 또 아이를 가지고 이런 소식들이 태종의 격노를 불러 양녕은 세자자리에서 폐세자가 되고, 너무 책을 읽어서 안질이 걸릴 정도여서 책을 못 읽게 하려고 통째로 감추던 3째 아들이었던 충녕이 세자에 책봉된다.

 

서울을 떠난 양녕. 사랑만 있으면 살 것 같았던 어리는 떠나버린 사랑에 목말라 하며 지금까지의 모든 허물을 한낮 나비의 꿈으로 여기고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한다.

보장 받은 군왕의 길 보다 더 지독했던 치명적인 사랑. 당신은 누군가를 목숨 바쳐 사랑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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