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을 건너며.
세월은 흘쩍 시공을 뛰어 넘어 어린 시절의 저설 속에 살아 숨쉬는 섬진강 상류의 요천수 개울가로 달려 갑니다.
지리산을 자락에서 뱀사골과 산청을 타고 흘러 내린 물은 바래봉으로 유명한 구름이 걸려 서 넘는다는 운봉 높은 자락의 이야기를 담아서 요천 지역을 지나면서 이름을 얻은 지류 천으로부터 시작 됩니다.
요맘때쯤이면 모내기 끝난 논 길을 따라 검정 고무신을 끌고 요천수를 향해 가다가 논배미 어느 자락에서인가는 똬리를 틀고 잠시 햇볕에 몸을 말리는 꽃 뱀을 보고 화들짝 놀래거나 어쩌면 바쁜 길을 재촉하던 늘메기가 나 보다 더 놀랜 몸짓으로 재빨리 풀숲에 숨어 버리는 형상을 보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콩닥거림을 뱀에게 손가락질하면 문둥이처럼 손가락이 잘려 나간다는 어느 근거 없는 미신을 찰떡같이 믿어온 터라, 가리키던 손가락을 발로 몇 번인가 나이 수 대로 밟아주고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던 햇볕 쨍쨍하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습니다.
더러는 아직 거둬 들이지 못한 보리 밭 사잇길로 지나가면서 거친 보리가시에 할퀴는 손등을 걱정도 하면서, 어느 날인가 거센 바람이 휘 몰아쳐 무참하게 쓰러진 보리들의 아우성에 안쓰러워도 하면서, 미리 물 속으로 뛰어드는 개구리들도 보고 종종 걸음으로 내 달리면, 어느새 요천수 방천이 보이고
해마다 홍수로 몸살을 앓던 그 곳을 어느 선지자가 둑을 쌓고 무너지지 말라고 팽나무를 심어 조성된 언덕처럼 길게 펼쳐진 둑길을 걸어서,
냇가로 내려가 자그마한 피래미 하며 수초로 엮어진 농수로 길을 거슬러 태양에 달구어진 뜨거워진 돌들을 밟고 지나가다 넓고 편평한 모래 밭 둔덕에서 혹은 길다란 바위로 자리 잡은 형상이 말을 닮았는지 말바위라 이름 지어진 커다란 물줄기가 소를 지어 물소리도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모습에 전율도 하고,
바짓가랑이 걷어 올리고 돌 틈을 들춰내어 숨어있던 작은 물고기며 다슬기 따위를 잡아서 작은 고무신에 물을 담아 한 마리씩 건져 담아놓고 시간을 보내다가, 잠시 배가 고파오면, 물 건너 편 앞산 자락 아래 편에 늘어선 늙은 뽕나무에 잔뜩 매달린 뽕나무 오디를 잎이 시커멓도록 따서 먹고 놀다가, 조금 더 올라가서 다양하게 무리 지어 피어나던 바위 솔도 하나씩 캐보고, 억새 무리 지어 피어난 작은 소를 건너서
물살이 빨라 진 여울 목 돌 틈 아래 숨어있던 붉은 색 빠가살이 한 마리 잡으려다가 손가락에 상처도 입고 이름을 몰라서 양미꾸리지라 이름 부르던 가로줄 무니 그러진 미꾸라지 닮은 참종개도 몇 마리 건져 올리고, 어쩌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모래무지와 이제 막 깨어나서 동작이 느린 메기 새끼도 몇 마리 잡으면,
그날의 수확은 대단한 것 이라 뉘엇 해가 질 무렵 고픈 배를 달래며 고무신에 담은 그날의 수확 물을 혹여 튀어서 도망이라도 갈라치고 한 짝으로 덮어서 맨발로 따가워진 발바닥을 살살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 시절의 흑백 필름이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워한다는 것에 대하여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도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향수 같은 것이지만, 어느 님과의 애틋하던 마음 씀이 이렇듯 저 건너편에 남아있는 여울목의 너와 나와 같은 사이인지라, 어느 때 인가는 베란다를 서성거리면서 달 밝은 이태백을 원망도 하고, 와인이나 포도주 한 잔 들고 목 울대를 넘어가는 달콤 쌉싸름 한 맛이 바로 어느 님의 흔적이 냥 느껴 질 때 속으로 삼키는 설움 같은 것으로 달래면서 그 동안의 고귀한 사랑을 나눠 주심에 깊은 감사함을 마치 드넓게 펼쳐진 호수 같은 정경을 떠 올리게 합니다.